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시절
옛 어른들은
부채 하나에 여름을 접고 폈다
앞마당 우물가에 앉아
고요히 풍경처럼 바람을 기다리고
뜨거운 등줄기에
찬 물 한 바가지 등목을 치던 그때
옷을 걷고
발목까지 찬 우물물에 담그면
오장육부가 깜짝 놀라
입술 끝까지 여름이 떨렸다
저녁이면 마당 끝 그늘에 앉아
손 부채질하며
먼 산도 그늘이 깊어질 때까지
말없이 여름을 견뎠다
그 시절의 바람은
이끼 낀 돌에 앉아 쉬다가는 바람
팔랑이는 부채 끝
작은 숨결이던 바람이었을 거다
오늘도 등 뒤가 더워지면
가끔은 그 여름이 그립다
찬 우물물 한 바가지가
인생을 식혀주던 그 여름이 그립다
방경희 시인의 <우물 곁 여름>
가시지 않는 열기와
매미의 아우성에 잠 못 이루던 여름밤.
하지만 차가운 물에 발 담그고서
달콤한 수박 한 입 베어 물고 하늘을 보면,
반짝반짝 별빛이 눈송이처럼 떨어지는 것 같았죠.
미지근한 부채바람으로 여름의 등을 떠밀며
기다리는 일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지만,
아주 가끔은 낭만이 있던 그 여름이 그리울 때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