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12 (월) 두고 온 우산
저녁스케치
2019.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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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두고 왔다는 걸
그 도시를 한참 떠나와서야 알았다
용지호수 근처 쌈밥집에서
그 도시 사람들과 늦은 허기를 달래고
때마침 비가 내리지 않아
그냥 와버린 것인데
까짓것 비 맞는 일쯤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우산을 두고 왔다는 걸 안 순간부터
마음이 못내 서글퍼진다
유목민처럼 살며 어쩌다 한 번씩 찾는 낯익은 도시
그 낯익음이 이제는 슬픔이 되어버린 도시
한 모퉁이에 팽개쳐져 있을 내 우산이
그곳에 남고 싶은 내 마음이었나 싶어
감추지 못한 내 그리움의 꽁무니였나 싶어
일도 마음이 먹먹해지는 것인가
우산은 마을 밖을 떠돌다 지쳐버린
늙은 까마귀의 날갯죽지처럼 엎어져 있을 터
잘 접어 끈으로 묶어두기만 했다면
누군가 넙죽 가져가 버리기라도 했다면
차라리 좋으련만
내 속에 사는 여러 마음 중에
끝내 보이고 싶지 않은 마음만
거기 홀로 꿈틀거리고 있는 것 같아
멀어지는 기차 소리는 점점 처연하게 들리고
영동 지나 다시 차창으로 쏟아지는 비는
무엇하나 움켜잡지 못하고 미끄러지기만 하는
까마귀의 발톱마냥 붉게 부르트기만 하고

김형엽 시인의 <두고 온 우산>


두고 온 우산처럼
자꾸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만 보면 생각이 나는 사람,
지금은 다른 사람 손을 잡고 있을 그 사람이
어쩌다 어쩌다 한 번씩 생각날 때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