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 20 (화) 살구나무 여인숙
저녁스케치
201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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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달포 남짓 살 때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한 주 서 있었다
일층은 주인이 살고
그 옆에는 바다 소리가 살았다
아주 작은 방들이 여럿
하나씩 내놓은 창엔
살구나무에 놀러 온 하늘이 살았다
형광등에서는 쉬라쉬라 소리가 났다
가슴 복잡한 낙서들이 파르르 떨었다
가끔 옆방에서는 대통령으로 덮은
짜장면 그릇이 나와 있었다
감색 목도리를 한 새가 하나 자주 왔으나
어느 날 주인집 고양이가
총총히 물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살구나무엔 새의 자리가 하나 비었으나
그냥 맑았다 나는 나왔으나 그 집은
그냥 맑았다

장석남 시인의 <살구나무 여인숙>


허름하지만 낭만이 느껴지는 곳이 있지요.

어릴 적 살던 집을 닮아서인지,
도시에서 느낄 수 없던 정취가 느껴져서인지,
사람냄새가 폴폴 풍겨서인지...

가끔 생각나고 궁금해지는 그런 장소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