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23 (토) 지리한 대화
저녁스케치
202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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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탱자나무 울타리, 어머니 생각나세요?
이젠 네 아들이 거기서 놀게다, 네가 뜻을 바꾸거라.
희뜩하니 문지방까지 내려온 하늘... 나는 중얼거리며
돈과 안락한 생활이 모든 인간을 만족시킬 수는 없어요,
어머니가 절 포기하세요.
나는 너를 낳고 온몸에 두드러기로 고생했다.
알아요, 그러셨어요.
바느질감을 내려놓으시며 어머니,
긴 한숨이 차고 슬프다.
나는 시계를 본다.
왜 이렇게 어수선한지 모르겠군요, 날 좀 내버려둬요.
가족을 버리겠다는 거냐?
가족이 나를 필요로 하진 않아요,
벌써 오래된 일이잖아요.
그건 네가 환상을 꿈꾸어 왔기 때문이야,
이제라도 뜻을 바꾸면 행복해질 게다.
행복? 그래요, 행복...
하늘은 매양 왜 저 모양인지, 나는 집을 나선다.
한 곳으로 몰리던 바람이 저만치 날 밀어다 놓고
골목길 접어 사라진다.
멍든 곳을 훤히 드러낸 나무들 몸통은
어떤 힘으로 겨울을 버티는 걸까.
어머니, 이 손톱 끝을 보세요,
아직도 가시에 찔린 자국이 시퍼런 걸요.

이연주 시인의 <지리한 대화>


어릴 적엔 되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었죠.
하지만 먹고살기 위해 가장 먼저
버려야했던 것은 바로 꿈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꼭 그러지 않았어도 됐을 것을,
가족보단 나를 좀 더 챙겼어도 됐을 것을,
지금이라도 내 인생을 살겠노라 외쳐보지만,
돌아오는 건 공허한 메아리뿐.

이젠 뭐든 양보만 하지 말아요.
우린 행복해지질 자격이 충분히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