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16 (목) 통화
저녁스케치
2021.09.16
조회 633

지금 거신 사랑은 결번이오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 주십시오.

대단히 죄송합니다.
지금 거신 그리움은 외로움으로
국번만 변경되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지금 다른 추억과 통화중이오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추억이 끝나는 대로 곧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제 청춘은 지금 부재중입니다.
저희 비서에게 메시지를 남겨 주시면
방황에서 돌아오는 대로 연락드리겠습니다.

그 때까지 당신이 부디
제 영혼의 전화번호를 부디 잊지 않으시기를.

이복희 시인의 <통화>


가을바람이 스칠 때마다
지난 추억들이 전화를 걸어옵니다.

피하고 싶은 옛 사랑에겐 결번 안내를,
더 깊은 가을에 어울리는 추억엔 대기 메시지를,
끝내 답을 내리지 못했던 일에는 부재중 메시지를.

이렇게 피할 거면서, 모든 걸 마주할 용기도 없으면서
끊임없이 추억의 전화를 기다리는 걸 보니,
마음이 벌써부터 제 멋대로 가을을 타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