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11 (목) 인생의 찬밥 한 공기를 생일 미역국에 말다
저녁스케치
2021.11.11
조회 684

미역국을 먹어도 생일은 지나가고
미역국을 먹지 않아도 생일은 지나간다

엄마의 사랑은
이목구비가 한결같은 소고기 미역국 같은 것
아버지의 사랑과
친구들의 사랑은 생일 케이크 같은 것
미역국과 생일 케이크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박수 받고 축하받을 일 없는 삶에
생일 케이크가 있어 참 다행이다

국물도 없는 삶에
인생의 찬밥 한 공기 말아먹을 수 있는
생일 미역국이 있어 참 다행이다

미역국이 끓는 냄비 속을 보여주는
사랑하는 한 사람과
미역국이 되어 만난다면
생일 케이크가 되어 만난다면
나는 밑도 끝도 없이 불쑥불쑥 위장 속에서
엄마의 미역국을 꺼내 마시기도 할 것이다

국물도 없는 인생에서
내 생일 날 아침마다
감사한 마음으로 먹고 또 먹은
반듯한 이목구비가 뜨거운
엄마의 미역국 한 그릇
한 그릇의 사랑은 소화하지 않고
평생 가슴에 간직하기로 약속한다

김병훈 시인의 <인생의 찬밥 한 공기를 생일 미역국에 말다>


시간이 지날수록 요란하게 생일을 챙기진 않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미역국만큼은 꼭 생각납니다.

내가 아닌 어머니가 드셔야 할 국임을 알지만
염치없게도 사랑이 담긴 그 그릇을 늘 받기만 했었죠.

다시 한 번 어머니의 미역국을 먹을 수 있다면
차갑게만 느껴지는 내 인생에도 온기가 돌 것 같은데.

차마 내색할 수 없어 체한 것 같은 생일이
한 해, 또 한 해 하릴없이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