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 10 (화) 지우개
저녁스케치
2022.05.10
조회 611

내 삶에는 더러 지우고 싶은 말이 있어
남몰래 지우개를 문질러보는 때가 있는데

나처럼 모서리가 닳아버린 지우개는
영락없이 윗줄도 아랫줄도 같이 지우곤 해서

지우개를 깎아 날을 세울까,
사각사각 생각을 세워보다가
그것도 열없어서 그만두는 날이 있다

내 삶에는 그렇게 못 지운 말이 있고
지우고 싶은 날들 몇 개가 있다

오성일 시인의 <지우개>


기억이란 게 참 제멋대로인 게
분명 내 것인데 내 맘대로 되지 않아요.

기억하고 싶은 건 돌아서면 잊기 일쑤고
빨리 잊고 싶은 일이나 상처가 된 말은
잊을 만하면 나타나 마음을 헤집어 놓죠.

그럴 땐 지우개로 싹싹 지워내고 싶지만,
그게 또 마음대로 되나요.

괜스레 좋은 일들도 지워질까 두렵고
다 지난 일인데 굳이 지워 뭐할까 싶고.

지울까 말까,
오늘도 망설임의 시간은 길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