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 28 (화) 어머니의 저금통장
저녁스케치
2023.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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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십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는
언니도 모르게, 오빠도 모르게
저금통장 하나를 남겨주었다

열아홉 살인 내게
중학생, 국민학생 두 남동생
뒤를 봐주라는 부탁을 하고 싶었는지

그 돈이 어찌 사용했는지
기억도 가물가물한데
11만 원은 어린 어깨를 무겁게 했다

어머니 안 계신 친정엔 내 편은 없었다
서럽게 시집가 지지고 볶으며 살면서
드문드문 각박한 친정 치다꺼리에 지쳤지만

두 동생 혼사 시키고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는지
저금통장의 기억도 사라졌다

언니도, 오빠도 돌아가신 이즈음
어머니 저금통장 이야기는
육십 줄 동생들에게 전설이 되었다

목필균 시인의 <어머니의 저금통장>


간절하게 도움이 필요할 때
보잘것없다며 내민 부모님의 쌈짓돈이 없었다면
그 거센 인생의 파고를 넘을 수 있었을까요.

마음 기댈 곳 하나 없을 때
먹어야 기운 난다며 어머니가 주신 따뜻한 밥이 없었다면
아마 지금도 누군가를 용서하는 법을 몰랐을 겁니다.

우릴 살게 한 부모님의 따스한 유산들,
덕분에 우린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