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25 (수) 밥 먹자
저녁스케치
2026.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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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자
이 방에 대고 저 방에 대고
아내가 소리치니
바깥에 어스름이 내렸다

밥 먹자
어머니도 그랬다
밥 먹자, 모든 하루는 끝났지만
밥 먹자, 모든 하루가 시작되었다
밥상에 올릴 배추 무 고추 정구지
남새밭에서 온종일 앉은 걸음으로 풀 매고 들어와서
마당에 대고 뒤란에 대고
저녁밥 먹자
어머니가 소리치니
닭들이 횃대로 올라가고
감나무가 그늘을 끌어들였고
아침밥 먹자
어머니가 소리치니
볕이 처마 아래로 들어오고
연기가 굴뚝을 떠났다
숟가락질하다가 이따금 곁눈질하면
아내가 되어 있는 어머니를
어머니가 되어 있는 아내를
비로소 보게 되는 시간

아들 딸이 밥투정을 하고
내가 반찬투정을 해도
아내는 말없이 매매 씹어먹으니
애늙은 남편이 어린 자식이 되고
어린 자식이 애늙은 남편이 되도록
집 안으로 어스름이 스며들었다.

하종오 시인의 <밥 먹자>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던 어머니의 “밥 먹자!”
밥이 뭐 대수라고~ 잔소리처럼 흘려듣곤 했는데,
아침저녁으로 가족들을 쫓아다니며 해보니 알 것 같습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무탈하길 바라는 기도이자,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다는 토닥임이었다는 걸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