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 13 (토) 슬픔으로 가는 길
저녁스케치
2025.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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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진실로 슬픔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낯선 새 한 마리 길 끝으로 사라지고
길가에 핀 풀꽃들이 바람에 흔들리는데
내 진실로 슬픔을 어루만지는 사람으로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슬픔으로 걸어가는 들길을 걸었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는 사람 하나
슬픔을 앞세우고 내 앞을 지나가고
어디선가 감나무 지는 잎새 하나
슬픔을 버리고 나를 따른다.
내 진실로 슬픔으로 가는 길을 걷는 사람으로
끝없이 걸어가다 뒤돌아보면
인생을 내려놓고 사람들이 저녁놀에 파묻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 하나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슬픔으로 가는 저녁 들길에 섰다.

정호승 시인의 <슬픔으로 가는 길>

답답해도 하지 못한 말이 얼마나 많은지.
억울해도 참아야만 하는 일은 또 얼마나 잦은지.
어른이라는 이유로 다 표현할 수 없던 마음,
채 아물지 않은 쓰라린 아픔들을
숨기지 않아도 되는 해거름 무렵엔
아무도 모르게 슬픔 속을 걷곤 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