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의 전도자는 해 아래의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다고 한다.
해 아래 있는 것들은 그가 어떤 존재이든지
어떤 힘을 가졌고 어떤 절대적인 가치관이나
뛰어난 지혜를 가진 성인들 이라고 해도
쉬 없어질 것이요, 그것은 헛된 안개와 같다는 것이다.
알렉산더도, 징기스칸도, 시이저도, 드골도, 처칠도 모두가 가버렸다.
바벨탑도 헛되고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지고
느브갓네살의 금 신상도 다 부수어졌다.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은 유한하고 찰나적이고, 순간적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들은
해 아래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철학이나 사상이나, 각종 종교들로 나타난다고 해도
그러나 이것들 또한 모두가 헛되어 없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시간 속에서 나타난 모든 것은 해 아래에 있다가 결국은 없어지기에
이 세상에서는 아무리 유명한 자들이나
사상이라고 해도 모두가 사라지고만 것이다.
그래서 해 아래 있는 자들이지만
영안이 뜨인 자들은 해 위의 것을 추구한다.
해 아래 있는 것이 없어지는 것이라면
그 해를 지으신 분, 그 해위에 계신 분은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영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해 위에 계신 분이 누구신가?
바로, 그 해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또 그 해를 말씀으로 창조했으니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다.
그래서 영원을 살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최고의 복으로 삼았다.
전도서 5:1에 보면 ‘주의 전에 들어가는 자들은 네 발을 삼가 지키라.’고 했다.
이것은 주님이 계신 성전에 들어가는 자들은
발걸음에 소리를 내지 말라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에 가는 자들은
모세나, 여호수아처럼 하나님이 계신 거룩하신 존전 앞에 서는 것이니
신을 벗으므로 소리를 죽여야 하고
성전을 향하는 발걸음 걸음마다
삼가 어긋난 길에서 지켜 하나님께 대한 경외와 순종을 표해야 한다.
다윗은 주께서 자기의 마음을 넓혀주시면
그 말씀이 있는 길로 평생을 달리겠다고 했다.(시19:32)
아침 안개같이 공허하게 아벨은 죽었으나
그는 해 위의 영원한 하나님께서 열납 받으시는 예배를 드렸기에
지금도 그는 살아있는 것이다.
잊지 말자.
이 세상의 모든 악독과 포악에 물들지 않고
그들로부터 엄청난 아픔은 겪는다고 해도
산과 땅의 영원함 같이
영원한 삶을 살려면 오직 우리의 발걸음은
예배를 위하여 하나님의 집으로만 삼가 옮겨야 되고,
오직 예배를 내 마음을 두며 그것을 위해
내 발걸음이 곁길로 빠지지 않도록 내 스스로 감시를 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 해 아래 것에서부터 마음을 지키기 위해
늘 하나님의 말씀을 준수하며
매사에 그 말씀대로 살려고 삼가 듣고 지키는 것이 이어져야만 한다.
따라서 의미 없는 예배를 멀리하자.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이 쏠려 경솔한 처사를 일삼는 자들을 멀리하자.
성스러움 없이 하나님의 집을 찾는 우매함을 버리고
늘 하나님께 거룩한 산 제물이 되는 예배를 드리자.
이것이 이 땅에서 우리가 의미 없이 살다가 空하고 無되지 않는 길이다.
사탄이란 영원한 길을 방해하는 자요,
대적자요, 원수요, 주의 길을 가로막는 자이다.
사탄은 해 위의 신앙을 해 아래로 끌어내리려고 한다.
그래서 언제나 해위의 사람과 곁에서 공존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그를 넘어뜨려 버린다.
베드로를 보라.
금방 그토록 귀한 신앙고백으로 천국의 열쇠를 소유하고서도
돌아서서 그 자리에서 사단이란 책망을 예수님께로부터 받는다.(마 16:22)
베드로가 사탄이 된 이유는 간단하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을 거역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이다.
지금까지 몸부림치며 해 위의 신앙을 소유하여 천국 열쇠를 소유한 교회라고 해도
주의 뜻을 거역하면 한 순간에 귀신의 처소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
제발, 다된 밥에 재 뿌리지 말자.
주님을 내 편으로 끌어들이려는 행위,
주님을 내 필요한 대로 끌어드리려는 것이 사단의 행위이다.
주님을 좀 안다고 하는 그 순간부터 다시 해 아래로 떨어지면 안 된다.
사단은 이 기회를 철저히 노리고 있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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