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전래민요 <나무타령>에 이런 노래가 있다.
"대낮에도 밤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불 밝혀라 등나무,
그렇다고 치자 치자나무, 거짓 없다 참 나무, 방귀뀌어 뽕나무……."
소리음으로 우리 주위의 흔한 나무를 익살스럽게 나타낸 그 기지가 돋보인다.
사람마다 이름이 있고, 동식물도 이름이 다 있는데
놀라운 것은 그 이름대로 특성이 있고,
그 이름대로 그 운명이 그에게 이어진다는 것이다.
바울이란 이름이 주어지니 그는 교만한 자에서 겸손한 자가 되었고,
사울이란 이름이 주어지니 그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하고 거만한 자가 되었다.
에스더는 그 이름대로 그 시대의 큰 별이 되었고,
야곱은 그 이름대로 또 사기치고 거짓말하는데 능수능란했고,
엘리멜렉이나 기론, 말룐 같은 자는
그 이름대로 유약하고 병약해서 베들레헴을 떠나 살다가 죽고 만다.(룻1장)
아간의 이름은 그 이름대로 주의 것을 도적질하다가 가족이 멸절 당했고,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그 이름대로 성령을 속이다가 부부가 함께 망해버리고
마가는 그 이름대로 초기에는 실패했다가 시간이 흐를수록
믿음이 더욱 강해져서 바울의 선교사역에 없어서는 안 될 자가 되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니 개인주의에서 민족주의로 바뀌어졌고,
사래가 사라로 이름이 바꾸어지니 한 개인의 어머니에서 열국의 어미가 된다.
사기꾼 야곱이 이스라엘로 바뀌니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정도의 큰 믿음의 주인공이 되고
그러나 다시 야곱으로 돌아 설 때는 人間적인 교활한 야곱이 된다.
믿음의 성공이 이루어지니 시몬이 베드로가 되어 예수님의 수제자가 되고
베드로가 다시 믿음에 실패하니까 갈릴리 어부 시몬이 되고 만다.
그래서 우리의 부모나 조상들은 자식들이 잘 되게 하려고 작명가들이나,
사주팔자 혹은 점쟁이들, 절에 가서 이름을 지었었다.
좋은 이름, 큰 이름을 줘서 그렇게 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人間이 주어진 그 이름을 갖고서는 절대로 그렇게 살 수가 없다.
人間의 삶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명히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이 주시는 새 이름이 있을 것이요.
우리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바로 이 새 이름을 불러 주실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본 이름은 무엇일까?
잘 믿다가 변질되는 자의 이름이 있을 것이고,
지금은 애물단지 같아도 끝이 좋은 사람이 있을 것이며,
매일 싸움이나 분열을 일으키는 자.
항상 나약하게 사는 아니면 주의 큰일을 감당하는 자의 이름을 가진 자가 있을 것이다.
본 이름을 갖자.
나의 새 이름을 빨리 찾도록 영적 신비스런 세계에 접목을 하자.
하나님이 내 삶을 주관하고 계시기에 내 이름을 빨리 찾아야만,
어쩌면 실패로 끝날 내 인생임을 돌이켜 주께로 더욱 줄달음 칠 것이며
나의 달란트대로 더 크게 주께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주의 백성들아.
주님이 주신 새 이름을 빨리 찾는 몸부림을 가져라.
그리고 주님이 주신 새 이름을 빼앗겨 옛날로 돌아가는 시몬(게바)이나 야곱이 되지 말라.


나의 새 이름은...?
아브라함
2002.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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