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복제는 성서의 참 의미를 인식 ,증거. 교훈치 못한 기독인의 책임도 있
필라
2003.01.16
조회 93
인간복제는 성서의 참 의미를 인식 ,증거. 교훈치 못한 기독인의 책임도 있다.

이번 세계 최초의 인간복제를 발표함으로서 세계인들을 놀라게 한 클로네이
드는 미국의 종교단체인 라엘리언 무브먼트의 한 비밀조직으로 알려졌다.
이 단체의 리더인 라엘에 의해 97년 2월에 설립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의 주장은 지성인들과 기독인들을 현혹할 만한 인류에 대한 놀라운 성
서적 기반인 근거를 갖고 있다. 고로 이들의 인간복제는 성서의 참 의미를
인식시켜 주지 못한 옹졸하고 나태하고도 부패한 저 자신을 포함한 기독교
계 지도자들인 우리 모두의 책임이 크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이 안타까움을 혼자만이 태울 수가 없어서 전 교계 지도자들과 교우
들의 대각성을 촉구하는 바이며 성서가 우리에게 교훈해 주는 참된 교리적
구속사를 바로 인식하고 실현하여 저들의 논리가 어리석음을 만천하에 공포
함으로서 미혹의 역사가 더이상 확산되어 지지 않토록 간절한 바램을 가져
본다.

클로네이드의 리더 [라엘] 일파는 이렇게 말한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UFO를 타고 온 엘로힘으로 불리는 외계인류에 의해 DNA
가 조작으로 창조되었고 그 엘로힘은 성서에도 나타나 훗날 하나님(God)으
로 오역 되었으며 예수 역시도 엘로힘의 발전된 복제기술로 부활 했다는 주
장이다.-------------------

창조 진행 당시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1:26~28참조)]라고 했고 창2~3장 창조 대략에서 언급한 바를 분석해 보면 이들의 방식과 표현과 주장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실상은 엄연한 반 그리스도적 간교한 사단의 논리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거듭나고 승화,복제되어야 할 인류를 성서의 창조법칙 그 원리를 악용해 사랑이 결핍된 하등한 육체로 마치게 하려는 사단의 음모 중 하나인 것이다.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선악을 아는 일에 거하게 된다는 논리도 아담과 하와보다는 들짐승 뱀이 먼저 알았다. 이는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 돈독칠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단은 언제나 반역을 도모했기에 하나님과 창조 세계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고 이에서 얻은 불완전하고 불합리한 비진리로 언제나 자신의 영역권을 넓히고 높여 간다.

[신령으로 해석해야 할 바를 유형으로 해석하고..] [성령으로 시작했으면 성령으로 마쳐야 할 것을 육체로 마친다.][은혜를 폐하고 율법으로 마치고..][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의 인도와 역사하심 속에서 사랑으로 율법의 완성을 이루어야 함에도 도리어 그 율법을 폐하려 한다.][겸손으로 시작하여 교만으로 마치고][믿음으로 정과 욕심이 십자가에 못 박고 자기를 부인해야 함에도 여전히 자기를 인정하고 욕망은 꿈틀 거린다.][믿음과 성령이 소멸되고 금욕주의로 전락하는 등]등 언제나 처음과 끝이 다른 법이다. 그래서 이단이요 사단인 것이다.
오호라~! 이 얼마나 우리가 미혹 되어 왔는가?! 근신하고 회개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바를[ 결코 죽지 아니 하리라~!]고 말씀의 뜻을 변질시키고 오역케 한다. 아주 그럴싸 하게 말이다. 이렇듯 예나 지금이나 사단은 간교했고 창조의 계획에 언제나 역천해 왔기에 미혹되는 이들이 대 다수이다.

빛의 아들들 보다도 사람의 자녀들의 지혜가 급 부상해 가는 것을 통해서 우리는 지혜의 신 하나님의 양자로 맞아 주신데 대한 그 결속됨과 관계를 점검해 봐야 할 것이다. 그래야 비로소 사단의 술수와 계략을 알고 그 미혹에도 전혀 동요치 않는 확신한 일에 거하게 되는 것이며 미혹된 이들을 구출할 수 있는 진리가 선포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다는 아니지만 클로네이드의 리더 [라엘] 일파의 주장들을 교계에선 황당하게 여길 뿐이고 생명조작 무조건 창조의 질서를 망가 뜨리는 범법행위로 일축해 버리며 지성인들을 이해 각성시킬 만한 그에 상응하는 참된 구속사의 진리를 신학적 입장에서 확실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모든 학문의 여왕임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과학,철학만도 못한 신학이 되어 버리질 않았던가.

어허.. 또다시 갈릴레오의 지동설이 생각난다.
후세에 밝혀질 부끄러움을 어찌 하려나...전통에만 연연하고 사리사욕만 부리질 말고 무한한 진리탐구와 그 적용에 정진해야할 것이다.

복제기술의 성공 여부가 정확히 가려지지 않고 한낱 고도의 날조된 사실로
판명이 되고 있는 현실이지만 한국내에서만도 이미 밝혀진 바대로 양과 송
아지등 복제가 가능한 점을 비추어 볼 때 그 기술은 성공할께 틀림이 없다.

극 비밀리에 발전해 가는 고도의 현대과학 기술을
신이 아니고서야 어찌 막을 수 있으랴 저들이 신을 흉내라도 내는 듯하기
에 그 교만성과 무모함이 언젠가는 고대 바벨의 저주를 거듭하는 역사로 초
래할 것이다.

신은 참을 가장한 흉내를 원치 않으시고 진실로 말미암은 실제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인류창조를 그의 권능있는 말씀을 통해 이루어 가는 과정을 보면
일종의 오늘의 과학 용어로 복제와도 유사한 점이 있다.
자신의 닮은 꼴을 만드시고 그 속에 자신의 신성을 부여해 주는 것은 엄연
히 성서속에 언급한 창조사를 분석해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야훼의 하나님 그분의 인류 창조사역은 오늘날 현대과학의 복제기술
과 방법 그 목적과는 너무도 상이하기에 인간복제 그 자체가 적 그리도적이
며 생명체 생성과 그 질서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를 간략히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인간의 출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남,녀간 사랑의 만남으
로 이루어 지도록 신은 그 생명의 생성원리 그 법칙을 세우셨다. 고로 사랑
없는 탄생과 양육은 그 방법과 수단과 결과가 어떻든 간에 오직 불행일 뿐
이다. 이는 신의 법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 한 만 못
한 존재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이 식어지지 않는 새 가족을 구상해
볼 때 존재의 이유와 삶의 의미를 바로 알게 될 것이며 비로소 행복이 무엇
임을 알게 될 것이다.

*둘째: 인간복제의 근본 취지가 인간의 영원한 생명 유지와 불임 부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그 연구의 정당성을 주장하고 설득해 왔다는
점에서 필자는 납득할 만하지만 이같은 사실은 영적인 거듭남을 통해 승화
되어야할 신의 뜻을 모른체 그저 차원이 낮은 본능적이고 짐승적 차원에서
육신의 종족 번식만을 원하는 이기적 욕망의 산물이요. 시대에 뒤떨어진 사
고이며 창조주의 섭리를 모르는 무지에서 나온 시대 착오적 발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이 땅에 지성인들은 더이상 쓸모 없는 배설물과도 같
은 지식에 몰입할 것이 아니며 알아야 할 것을 바로 알기 위해 사도바울의
사상과 태도를 분명히 가져야 한다.

분명코 신이 인간에게 불임을 허용치 안했다.
누구나 생육번성의 축복을 받고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인간의 그릇된 문명속에서 파생한 기형적이고 유전적 불임의 저주
는 오늘의 참과 사랑없는 또다른 사회의 악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신은 인간에게 그 불임이라는 불행을 통해 전화 위복케 하는 또 다
른 생명체 생성원리를 제시 하신다.
이는 다름 아닌 [진실한 믿음안에서의 기도]와 [이웃사랑] 나아가 선교에
몰두하여 [영적 자녀들을 낳는 길][만유통합적 신령한 새 가족 구성]인 것
이다.

불임자는 임신을 위해 진솔한 기도를 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성서는 무자했던 인물들 중 대표로 10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비롯하여 사사시대 단지파 중 무자했던 마노아의 아내에게서
나실인 삼손의 출생과 세례요한의 모친 엘리사벳의 일생을 통해 잘 보여 주
고 있다.(눅1:7~13참조)
이들은 저마다 휼륭한 족장 아비요 사사요 선지자의 역할을 담당했다.
뿐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사역과 섭리 그 계획을 안 사도 바울은 스스로 고자가 되었으
며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해 짧은 일생을 바쳤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를 낳아 준 마리아와 형제들과 온 이웃 무리들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사는 이가 자기의 부모 형제 자매임을 선포
하셨다.

현대의 불임 부부가 신앙심을 가지고 진솔한 기도를 드린다면 역사를 새롭
게 하고 대를 이어갈 만한 영,육적 휼륭한 자식을 얻게 될 것이며 보다 많
은 이들을 부모형제지간으로 얻게 되어 신령한 만유통합적 새 가족 구성원
이 될 것이다. 그렇다고 육신의 피가름의 형식을 고집하며 복음을 왜곡한
변절된 통일교 문 선 명 집단과는 엄연한 질적 차이를 두고있다.

만일에 이러한 순수 복음적 새 가족관이 이 땅에 서지 못한다면 순결한 사
랑은 땅에 떨어질 것이며 현대 복제기술 방법을 택하여 얻은 자식에게는 처
음부터 거짓으로 시작하여 정신적인 불행을 면치 못할 것이며 임상실험의
보증없이 얻은 자식을 통해 무질서와 고통과 비애를 맞을 것이다.
한 예로서 복제된 동물의 수명이 짧다는 것과 새로운 질병발생 가능성에 대
한 처방의 불확실성과 성장기와 사회생활에서 내외적 반응을 보일 예측치
못했던 여러 문제점들이 그 불행의 가능성을 예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고로 무자한 이들은 진실한 믿음으로 기도해야 하겠고 자신의 불행을 불행
에서 끝내지 말고 그 초기의 불행을 통해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할 줄 아는
품성으로 승화될 때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며 사랑할 줄 알게 될 것이
며 나아가 영적인 자녀를 생산하는 의미있는 생을 살아 감으로서 하나님께
서 더 없는 은총으로 복을 주실 것이며 그의 삶은 영원한 행복으로 영위토
록 보장해 줄 것이다.

*셋째: 육체적인 하등 인간 복제를 떠나서 인류가 고등 그리스도화로 복제
되어야 한다. 이것을 기독교적이고 신앙적인 면으로 달리 표현하자면 거듭
남이요. 전 신자의 그리스도화로 성화체를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제적 인류 창조와 승화의 대략은 이렇다.
스스로 있는 자 조물주 야훼의 하나님은 흙이라는 존재로 자신의 형상을 만
드셨다.
생령인이 못된 사람을 택하여 생기를 부여하고 영적인 존재가 되도록 업그
레이드 하셨다. 뿐 만이 아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성단계를 밟아 가고 있
다.
흙에서 구속적 창조를 이루신 하나님은 에덴을 창설하신 후 그 곳에 머물
러 관리토록 하셨고 독처한 아담을 마취시켜 잠들게 한 후 생육번성할 수
있는 단계로 이끄신다. 의학 용어로 쉽게 말하자면 수술에 들어 가신다. 그
러나 그 차원과 방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아마도
복제시술을 강조하는 이들이 이에서 흰트를 얻었으리라 본다. 그러나 흉내
에 멎어진 인간 기술에 불과할 뿐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창조는 아직 그
호완성을 이루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어 때가 되매 하나님은 남자인 아담의 몸 일부 그 살과 갈비뼈로 하와라
는 여자 배필을 생성하여 사랑을 통한 생육번성의 존재요 짐승과는 달리 이
성적이며 영적인 존재이며 로봇이 아닌 독립적 자유로운 개체로서 그 하나
님의 형상인 사람이 완성되어 진다.

하지만 아담에게서 생성된 하와는 아담처럼 말씀을 직접 계시받지 못했고
간접적으로 들었기에 확신성이 결여 되었을 뿐 더러 더욱이 이성적이질 못
했기에 간교한 들짐승 뱀에게 현혹된다.

지금도 하나님의 관계가 직접적이질 못한 신앙인들은 모두가 여자처럼 미혹
되기 쉽상이다.

그 예가 비일비재하나 그 대표적 실예를 들자면 영적인 거듭남 보다는 육적
인 복제인간을 고집한 자들이요 신령한 복음을 육으로 전락시킨 문 선 명
집단들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서를 억지로 풀다가 결국 미혹되어
오해 변역한 하나같이 성경을 빙자해 육으로 전락된 이단적 변질된 신앙인
클로네이드 일파와 같은 무리들인 것이다.

이는 모두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를 이루지 못한 하와적 불확실한 신
앙 상태가 변질의 주 원인이 된 것이다. 고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직접적이
면서도 바르게 갖는 것이 중요하다.

뿐만이 아니다.
직접적인 계시를 받은 신앙인들도 조심해야 할 것이다.
성령으로 시작하여 육체로 마치는 이들이 많고 후에 하나님으로부터 외면
과 버림받을 불법 신앙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일 수록 사랑이 식
어지고 불법이 성하여 미혹되는 사례가 많으리라고 예수께서 마태 24장에
예언 하셨다.

성서는 아담 타락으로 인해 깊은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 주고 있다.
인류 중에서도 아직 내적인 완전한 신성을 이룰만한 성숙한 단계에 이르지
못한 하와로 인해 아담 역시도 타락에 동참한다.

깊이 생각해 보면 아담이 하와를 얼마나 사랑했느가?
자신의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며 선악과를 함께 먹고 하와의 죄 짐
을 같이 짊어진 아담의 태도가 인류의 죄 짐을 대신 짊어진 둘째 아담 예
수 그리스도의 표상으로 이해 할 수 있는 진정한 사랑의 공식이라고 긍정
할 수도 있고 생령인이자 직접계시를 받은 이들이 주의해야 할 경계의 역사
로 가르쳐 주시기도 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늘 날에도 성령을 받은 이들이 변질되는 이유 중 하나가 아담이 이미 사
단에게 현혹된 하와의 또 다른 선악과적인 논리인 사치욕과 물욕. 교만을
받아 들인 것과 같이 주변의 변질된 지식에 서서히 동감하고 말려드는 것이
다. 사단의 간교한 전술은 바벨론의 황금만능주의적 치부와 사치와 교만문
화로 끝날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러나 선악과의 길은 결국 죽음뿐이다.
여기에서 결코 미혹되지 않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이렇듯 인간의 수준이 이러했기에 타락을 미리 아셨던 하나님은 그들의 자
유의지 부여를 여전히 파기치 않으셨고 단지 잉태의 고통과 수고와 죽음을
벌로 내려 예정했던 길을 택하여 에덴에서 추방을 가하는 법적 심판을 행
사 하셨다.

하지만 드러난 허물에 부끄러워하는 인류에게 하나님의 배려는 에덴에서의
양을 잡아 가죽 옷을 지어 입혀 그 수치를 기리우셨고 인류를 결코 버리지
않으셨으며 언제나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시켜 주셨고 언젠가는 반드
시 회복해 주실 것이라는 구원의 무언약속까지 하셨다.

이로 인해 신성이 결핍된 아담과 하와는 에덴이 아닌 황무한 땅에서 수고하
며 생육번성의 복을 누려야 했고 사망을 떨칠 수 없는 유한한 존재가 된 것
이다.

이렇게 번성되어 가는 인류에게 하나님은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셨으며 죄
의 번뇌와 두려움 속에서 헤어날 수 있는 방법론 속죄제를 아벨을 비롯한
약소 민족인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제시하셨고

때가 차매 급기야 지금으로부터 약 2000년전 그 인간의 육체가 땅에 편만
해 지자 예정하신 바대로 본능적인 인류를 신성화 시키기 위해 사랑의 결정
체인 하나님은 마리아라는 여인의 몸 속을 빌어 성령으로 잉태 출생함으로
서 인류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이 되었다.

이렇게 인류의 모습으로 잉태되어 단번에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고 십자가
상에서의 희생과 부활후 믿고 회개한 이들에게 성령을 보내시어 내재 충만
하심으로 인간과 하나님과의 절대화목이 이루어 지고 직접적인 동행을 통
해 인간을 신의 자녀로 승화시켰다.

우리 하나님은 오래 참으심과 다양한 방법과 모습으로 인간을 찾아서 그 초
기에 부여한 인간에게 주어진 각인의 자유의지라는 마음의 통로를 이용하
여 선교를 통해 찾아 나서며 닫힌 마음을 노크하고 설득하여 택하신 자들
을 모으신다.

이 구속사역에 전개되고 있는 동안 누구든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진
실로 믿는 은혜의 영역안에 거하기만 하면 구원에 이르게 되는데 항상 성령
의 교통이 이루어 지고 그 속에서 신령한 그리스도화로 승화 되어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빛과 소금으로 나타난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누구
든지 새로운 피조물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로 자연 이루어 지게 마련
이다. 만일에 믿는다는 신자의 삶 속에 그렇치 못하고 여전히 사욕적인 육
신에 속한 상태라면 더 늦기 전에 회개를 해야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종 모든 미혹을 조심하며 오직 예수 믿는 십자가의 도 안에
서 육신의 소욕으로 가득찬 자신을 십자가 상에 못 밖고 끝까지 진리로 변
화시켜 신인합일이라는 신의 공존체 그리스도의 새로운 형상을 입어야 한
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며 인간의 도리이고 인류에 대한 창조의 목
적이고 구원의 완성이며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는 유일무이한 길인 것이다.

그럼에도 똑같은 성서를 보고도 받아 들이는 견해가 다르고 이해한 것이 달
라 모두가 제각기인 것은 왠 일일까? 물론 구원관에 대한 표현 차이는 있
을 수 있으나 핵심과 중심을 잃어버린 그릇된 신앙관과 삶의 가치관. 생명
의 창조관들은 밭에 잡초와도 같고 가라지 같은 존재들일 것이다.

잡초가 무성함은 게으른 농부의 탓이기도 하고 가라지가 무성함도 잠자는
신앙들이 있기 때문이다.

곡식이 많이 심겨 질수록 잡초와 가라지가 차지하는 공간은 좁아지고 반면
밭에 비해 곡식이 차지하는 공간이 좁아지면 가라지 잡초가 무성하게 되는
법이다.

이와 같이 현대 기독교계 지도자들이 졸고 있고 양심의 눈이 확연히 분별케
하는 뽑아야 할 잡초와 같은 자아속에 존재한 육신의 정과 욕심. 우상숭배
적이고 반 기독적이며 적 그리스도적인 것들은 뽑질 못하고
도리어 예수께서도 알곡이 뽑일 까봐 알곡과 유사한 가라지를 가만 두어라
하셨건만 교계는 교파 당파 싸움으로 전쟁을 방불할 정도이며 온 땅은 확연
히 드러난 잡초가 무성해져 전 세계를 뒤엎고 교계를 점령해 가고 있다.
이로 인해 상처입은 성도들이 즐비하고 실족하는 이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
아 연자 멧돌을 목에 달고 깊은 물에 던지 우는 것보다 더욱 심한 화를 면
치 못할 이들이 부지기 수이다.

이제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할 때이다 가라지와 잡초들이 더이상 거룩한 곳
에 서지 못하도록..더이상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치 못하도록..
저들이 우리의 알곡 역사에 주눅이 들어 활동력이 스스로 저하되고 약화 되
도록 기독교의 핵심으로 돌아가 연합을 이루고 빛으로 어두움의 영역을 밝
히 비추어야 할 것이다.

전 크리스챤들이여!
그대는 빛과 소금임을 잊지 말라
그 사역을 감당키 위해선 자아가 죽는 믿음과
성령의 역사가 주가 되어 지배해야 함을 결코 잊지 말라.
가식과 위선.. 사악한 욕망 덩어리를 십자가에 올려 놓고
이제 거룩한 성령의 임재를 고대하시라.
그의 주권과 인도를 사모하시라
거듭난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이유가
믿음 안에서 빛과 소금으로 부패한 세계를 새롭게 하는데 있음을
좌우명으로 삼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성령의 은혜가 없이는
결단코 이 땅에 생명의 역사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명심하시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밖혔나니
그분의 부활이 곧 우리의 부활이 되어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임을 바로 인식
하고 삶 속에서 증거를 갖고 행사하며 하나님의 업그레이드적 창조를 교훈
하고 전파하자.
이로써 육신에 속한 이단적 사상들이 얼마나 수준 이하이고 부끄러운 왜곡
된 진리임을 자각하고 진리의 빛으로 나아 오도록 힘써 역사하자

더이상 기복적이고 우상숭배적이며 유불선 과학 철학 이단사상만도 못한 기독신학 일종의 종교로 젖먹이 유아적 신앙에 머물지 말고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바로 이해하여 그 분의 죽음과 우리의 신앙이 결코 헛되지 않토
록 우리의 믿음을 재 정비해 보자

우리의 역사가 잠잠하면 이단의 세력은 날개를 치리니 반드시 그 핏값을 치
루어야 할 것이다.

잠잠치 말라! 시대의 파숫군들이여! !
성령의 조명을 받으라. 사단의 계략을 간파하라
그대들에게 성령의 선물로 세례를 주어
거듭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아시라!
자신에서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구속사의 온전한 진리를 담대히 증거하시라 !
거짓되고 교만하고 잔인무도한 본능적 사람에서 겸손하고 온유한 신성에 참예하는 그리스도화로 승화되는 진리를 증거하라
종에서 양자로 거듭나는 복음을 언행심사로 증거하라
어둠의 존재에서 빛으로 승화되는 진리를 사수하라
우리의 선한 싸움은 하나님 창조사역이 될 것이며
신의 공존체 안에서 더불어 누리는 기쁨이 충만케 될 것이다.
http://www.chejucal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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