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성품을 가진자들..
아브라함.
2003.01.31
조회 219
대개 사람들은 화가 나면 앞뒤사정 가릴 것 없이
둘러 내팽개치고 자기의 감정조차 잘 다스리질 못하고 있다가
시간이 흘러 화가 식어지고 난 뒤에는 엄청난 후회를 하면서
통곡하는 경우가 많지만
하나님의 화, 하나님의 진노는 거룩한 분노요,
그분의 성품을 대변하는 표현이기에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질서 없이, 감정을 싣고 보복의 차원에서 나타나는 것이 절대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노하시지만,
그 진노와 간섭, 책망, 징계를 통해서 시간이 흐르면 그 진노하심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책망에 바로는 끝까지 반항했지만
드러난 마지막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 밖에 없었고,
사울왕의 삶 역시 그가 아무리 하나님의 간섭을 거부했다고 해도
마지막 결과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울은 죽고 다윗이 왕이 되고야 만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어도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깨뜨려 버리시고
마가가 선교의 길이 어려워 도망을 쳐,
이것이 바울이 감당 못할 화로 표현이 되었어도
결국은 바울에게 가장 유익한 동역자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아무리 화가 나고
분이 나서 어쩔 줄 몰라 하더라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감정은 주의 성품을 닮아 거룩한 성품으로 드러나야만 한다.

다윗을 보라.
자기를 죽이려고 그렇게 몸부림치는 사울에게
그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그는 끝까지 대하여 준다.
모세의 별명은 온유가 勝한자이다.
40년 광야 가운데서 수 없는 어려움과 배반, 비난, 멸시를 받고 살았어도
하나님의 마음을 끝까지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인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여
자기 마음속에 있는 죄의 소원이
화가 날 때 자기의 문 앞에서 그대로 드러나 버리며,
함은 욕정을 참지 못해 부끄러운 근친상간을 하여
더러운 저주를 받아 영벌을 받으며 이를 갈며 살아가고 있다.
아간은 자신의 죄를 지적하는
하나님의 간섭이 점점 좁혀 와도 회개할 줄 모르고
심지어 세례요한까지 예수를 의심하다가 죽어갔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돌아가려면 거듭나야 한다.
거듭남은 근본이 바꾸어지고 종자가 바꾸어지는 사건이요.
옛것을 버리고 새것을 갈아입는 사건이다.
거듭나고 나니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담대히 예수의 시체를 빌라도에게 가서 요구하고
예수를 부인하던 베드로와
죽음이 무서워 도망치던 제자들 역시 거듭나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주를 위해 능욕 받고,
주를 위해 죽는 일조차 기뻐하고 즐거워한다.

신의 성품으로 돌아가자.
내속에 거룩한 성품이 돌아와야
오리를 가자고 할 때 십리를 갈 수 있고,
오른뺨을 때리면 왼 뺨도 돌려댈 수가 있고,
스데반처럼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예수님처럼 저들의 죄를 사하는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주님의 성품은 자신의 모든 것까지 주어서라도 생명을 살리는 성품이다.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뿐이 아니라
그분이 입었던 옷 하나하나까지 전부 찢기어나가고
어떤 것은 통 채로 주셨다.
주님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시든지 간에 원하는 것은 다 주셨다.
그렇다.
거듭나면 삭개오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고서라도 예수를 따르지만,
아무리 율법에 정통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산다고 해도
거듭나지 않으면 부자청년처럼
마지막 영생을 얻는 길 앞에서는 돌아서고야 만다.

우리를 낮추실 때에 하나님의 성품으로 돌아가자.
우리를 괴롭히면, 문제가 생기면 생길수록 하늘을 바라보면서 살아가자.
이 세상에 악의 존재가 크면 클수록 더 하나님께 돌아가고
사람들의 완악함이 강하고 믿음의 백성들마저 거룩과 순순함을 잃어갈 때
그래도 거듭난 자들은 끝까지 주님의 거룩을 지키며
성적인 욕망마저 聖性으로 다스려 완덕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때때로 악이 너무 판을 치고
세상의 강한 힘이 강하게 우리를 눌러 버리면
우리는 의기소침하고 실망할 수밖에 없고
자신의 정체성마저 의심스러워 질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성품으로 거듭난 자들은 곧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거듭난 의인들은 일곱 번 넘어져도
여덟 번째도 거뜬히 일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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