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육이 풍성한 비결.
아브라함.
2003.04.02
조회 206
우리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광야에 나가신 이유는
4,000년 인류역사에서 누구하나 광야에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담부터 에덴 광야에서 사단과의 싸움에서 지기 생각하더니
4000년 동안 누구하나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가 없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질문을 던졌고
사람들은 이 질문에 정확한 답을 던져 누구하나 사단을 물리치질 못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기느냐 지느냐의 문제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이다.
사단의 질문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한 것으로
진리로 포장되고 선으로 가면을 하여 인간적으로 보면
지극히 생산적이며 도덕적이며 윤리적인 것들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사단이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광야생활이기 때문에
바로 사단의 질문과 싸워 이길 때만이 道의 여정에서 승리하게 된다.

道의 싸움에서 지면 누구를 할 것 없이 죄의 노예가 되고
그 교회는 영생을 주는 교회가 아니라 죽음의 교회가 된다.
에덴에서 아담이 실수한 이 후 모든 아담의 후예는
이 사단의 질문에 누구하나 정확한 답을 하지 못해 전부 죽어갔다.
여기서 예수님은 둘째 아담으로서
사단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제시함으로서 승리자가 되어
잃어버린 새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형성한다.
야곱이 광야에서 천사와 도의 싸움에서 이겼을 때
그는 새사람 이스라엘이 되고 12지파의 축복을 받는다.

예수님의 첫 싸움은
돌이 떡이 되게 하는 인간 근본문제를 해결하는 질문이었다.
아무리 영적인 것을 이야기해도
성인군자의 삶을 이야기해도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근본적인 인간의 문제는 해결이 되지 않는다.
떡은 우리 삶의 근본이다.
에덴 광야에서 아담도 사단으로부터 받은 첫 질문은 선악과를 먹는 문제였다.
출애굽한 모세도 광야에서 제일 먼저 부딪힌 문제가
60만 이스라엘 공동체를 먹고 마시게 하는 떡의 문제였다.
육신을 가진 자들은 언제나 심각하게 대두 되는 첫 문제가
생명을 살리는 떡의 문제이기에
사단은 항상 떡 문제인 경제문제를 가지고 시험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산다는 이 말씀 한 마디로
사단은 그대로 물러가 버린다.

이 세상 누구하나 간단한 말 한마디에 넘어가는 자가 없다.
그런데 사단이 예수님의 말 한 마디로 물러가 버렸다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숨겨진 하늘나라 경제관을
사단은 도저히 실천할 수 없었고 빼앗을 수도 없었다는 뜻이다.
잊지 말자.
모든 축복은 사단이 결코 따라오지 못할 행동을 하면
하늘의 축복은 그대로 우리에게 임한다.
하늘나라 경제관을 하늘의 풍성한 삶으로만 생각하지 말자.
하늘나라 경제관은 하늘의 풍성한 삶이 그대로 땅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똑같이 먹고 마셔도 하늘나라 경제관을 갖고 사는 자와
세상의 삶을 누리는 자의 삶은 차원이 다르다.

사단의 시험에서 이기려면 교회는 분명히 하늘나라 경제관을 가르쳐야 한다.
애굽의 총리대신 요셉은 칠년 기근 속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유비무환으로 모든 기근을 이기게 해주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
십일조 문제나 각종 헌금 이야기가 아니라
하늘나라 경제관을 분명히 가르쳐야 한다.
금식 후 허기진 배를 채우는 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 급선무이다.
사업이 실패했을 때, 공부를 못할 때
그 어떤 것보다 이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당연지사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님은 아무리 급하고 당황스러워도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먹고 사는 것이
공부 먼저, 육의 문제, 사업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육의 양식을 무시하고 육의 문제를 무시하라는 것은 아니다.
배가 고파 죽어가도 하나님 말씀만 붙잡고 있으면 되고
공부를 못해도 교회만 다니면 된다는 것이 아니다.
육신의 문제보다 도의 양식을 먼저 강조하라는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고 난 뒤에 의식주문제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는 하나님의 사람,
개인주의나 이타주의보다는 신본주의 사람이 먼저 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망한 이유는
하늘의 만나라는 道의 양식을 육의 양식으로 바꾸어 먹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도의 양식으로 만나를 주었는데
저들은 하늘의 만나를 애굽의 양식으로 비교해서
그것을 사모하다가 망하여 죽고 만다.
아담도 먹어야 할 생명과를 먹지 못하고
사단이 주는 양식을 분별치 못하고 죽었다.

진리를 오각하지 말자.
하나님의 방법대로만 하면 다같이 먹고 살고
하늘나라의 풍성한 삶을 함께 누리며 살게 되어 있다.
사랑하는 자들아,
아무리 도덕적이고 인간적이고 윤리적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먹고 마시는
신본주의의 삶을 철저하게 그리고 진실되게 살 때
우리는 이 도의 광야에서 누구보다 멋진 승리자가 될 수 있다.
잊지를 말자.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구하여야 한다.
하늘의 신령한 음식을 세상의 썩을 양식으로 만들면 절대로 안 된다.
모든 영적 풍성한 삶의 비결을 잊어버리면
그 순간부터 그에게는 사단의 지배를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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