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라도 잊어서도 망각해서도 안 될 일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절대로 고난 속에 그냥 두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물론 때때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하나님이 정말 나를 버렸는가 싶어 원망하기도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악인이 형통하고 의인의 고통에 대하여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따지듯이 대들었다.
어째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렇게 고통을 당하여야 하는지
그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사실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들이라고 하여 고통이 없어지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아픔에 대한 책임을 져주시기에 반드시
고통이 고통으로 끝나지 않고 슬픔이 슬픔으로 끝나지 않는다.
아브라함을 통한 여호와의 언약은
“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를 저주하는 자를 내가 저주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자는
어떤 경우에라도 그 삶을 그냥 넘어가지를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잘 모른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의 힘과 얄팍한 지식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마음껏 괴롭히며
또 같은 믿음의 사람들끼리도
원색적으로 살려는 자들을 또 얼마나 괴롭히는가?
그러나 다윗의 아픔을 한번 생각을 해보라.
그렇게 오랫동안 사울로부터 쫓김을 받았어도
결국은 통일왕국의 왕이 되고야 만다.
룻의 신앙고백은 일곱 아들보다 더 나은 결과를 갖게 되고
욥의 아픔은 훗날 결국 갑절의 축복을 받고야 만다.
헤롯은 예수를 잡으려고 몸부림치다가 결국은 미쳐서 죽었고,
기독교를 죽어라고 핍박을 하던 네로 황제는 자살하고야 만다.
잊지 말자.
주의백성들의 고난은 절대로 재로 끝나지 않고 눈물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원리는 끝 날에 주를 위한 삶의 보상으로 이어진다.
주를 위한 고난의 삶, 주를 위한 모든 날들과 시간에는
반드시 때가 되면 하나님의 보상이 나타난다.
초대 교회의 고난은 300년 가까이 계속 되었어도
그의 끝은 결국 탄압하던 로마가 기독교를 받아들이게 되며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며 망하게 한
바벨론, 페르시아, 헬라는 역사에 이름도 없이 다 망하고야 말았다.
600만 유대인을 학살 한 독일의 히틀러도 넘어졌다.
이런 현상은 우리가 살면서
세상 사람들이 주장하는 그러한 삶에 동참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들로부터 소외당하고 괴로움 당해도
하나님은 절대로 그 아픔을 그냥 두고만 있지 않는데서 나타난다.
내가 괴로움은 당하는 것만큼
하나님은 내 괴로움의 밑바닥에서부터 일하고 계시며
내 눈물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계신다.
사랑하는 자들아, 오늘의 아픔이 끝날 시간이 더 들는지 모른다.
어쩌면 용돈을 더디 주시는 부모의 심정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대하시고 계시는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 신앙의 마지막 결론은
내 원수들이 내 앞에서 무릎 꿇는 날이 온다는 것이며
우리는 죽음의 묘지위에서라도 반드시 부활의 깃발을 높이 날리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내 믿음을 인정하시고 나를 도우시는 분이 되도록
우리는 언제나 순종하는 자리에서 벗어나지 말자.
아무리 한 숨이 이어지고 실망이 깊어진다고 해도
우리 삶의 결론은 반드시 주님이 갚아 주신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어떤 순간에도
나를 지으시고 나를 빚으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지 않는 길이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가 잘못 되어졌기 때문에
한때는 모든 아픔과 어려움이 오기도하고
나의 잘못으로 고난이 깊어지기도 하고,
하나님의 섭리로 인하여 기나긴 날을 고난 속에서 몸부림을 칠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라도 돌이키기만 하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리기 위해 우리는 날마다
오염된 죄의 장소, 변질의 장소, 잃어버린 장소에서 벗어나도록 힘을 다하자.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삶의 기초, 생활의 변화를 새롭게 하여야 한다.
주님의 도우심, 하늘의 갚으심이 있도록
어떤 고난 속에서도 거듭남의 자세,
변화된 삶, 새 가치관을 잃어버리면 안 된다.
제발 어렵다고 해서 쉽게 나를 지으시고 나를 부르시고,
나를 택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지 말자.
고난이란 도구로 나를 파헤쳐 가고
어떤 잘못된 나의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고 하여도
끝까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은 어떤 아픔의 경우에 내가 빠져 있다고 하여도
반드시 하나님은 나를 신원해주시고 아픔을 갚아주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신원해 주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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