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나는 교회에서 주의 종들과 성도들이
싸우는 것을 보고 참 이상하다고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왜 하나님의 교회에서 성도들이 주의 종들과 다툴까?
그런데 이문제가 남의 문제가 아닌 나의 문제로 삼년 전에 다가 왔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목회생활 25년을 넘기면서
단 한번 성전을 짓고 난 뒤에 교회에서 불협화음을 낸 적이 있는데
가만히 그때를 돌아보면 목자의 말을 저들이 믿어주지 못해서였다.
목자는 진실을 이야기하고,
진실하게 살려고 무척이나 몸부림을 치는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저들은 모든 목자의 소리를
人間의 변명이나 합리화 시키는 것으로 듣는다.
나는 그때 몇 달을 울면서 밤을 새웠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왜 서로를 못 믿는 현실이 되어 버렸을까?
하나님은 그렇게 사랑하라고 했고,
용서하라고 했고, 원수까지도 품어줄 것을 요구하시는데
왜 사람들은 나의 진실마저 그들의 생각에서 부정해 버릴까?
도대체 이 원인이 어디에 있는 것일까?
나는 그날 이후 이 문제를 갖고 지금껏 몸부림을 치고 있다.
결국 내가 스스로 얻은 정답은
사람들이 목사님을 하나님이 세운 주의 종으로 보지 않고
한낱 자기들과 같은 사람의 하나로만 보기 때문임을 알았다.
물론 주의 종들도 밥 먹고 쉬며 성질도 내는 인간이다.
오늘날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같은 믿음의 식구들에게 무엇을 믿고 맡겼는데도
그것이 배신으로 돌아올 때가 한두 번이 아니고
믿었던 식구들마저 자신을 몰라줄 때가 너무 많으니
성도들은 살면서 세상과 신앙이 너무도 다른 모습을 보면서
갈등을 한다.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되겠느냐는 것이다.
하도 많이 속다 보니까 목사님마저 못 믿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
나는 지금까지 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open시켜 놓고 살아왔다.
사택은 물론 내 삶의 전부를 다 드러내어 버린다.
교회의 모든 행정기능은
달런트를 가진 자들에게 맡겨 버리고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재정까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모르고 있다.
주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대로 받고 받은 대로 드리며 산다.
그저 나는 말씀과 기도에만 전무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 난 뒤
사실 오년 전에 지은 이 성전도
모든 성도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로 지은 것이다.
그저 나는 성전이 다 완공되기 까지 기도한 것 밖에 없다.
그런데 성전을 다 짓고 난 뒤 일년이 지나서
몇 사람들은 별일도 아닌 것에 가슴 아파하며
괴로워 하다가 한께 떠나가 버렸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생겼을까?
나는 이것을 두고 몇 달이나 가슴 아파 했었다.
같은 성도의 한사람이 되어 저들의 입장 가운데에 서서
많은 시간을 내어 깊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기도하면서 받은 결론은 결국 하나였다.
주의 종들을 하나님의 사역자가 아닌
자기들을 속이며 배신한 人間들 중의 하나로,
그런 속물로 보았기 때문 이었다.
만약에 우리 목사님들에게 언제나
하나님의 형상이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든지
어떤 신령한 기운에 완전히 둘러싸여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든지 하면 되는데
우리 목사님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과 별 차이도 없고
겪어보니까 실수도 많고 약점도 많고
시간이 흐를수록 人間性 또한 나약한 것이 드러나 보이니까
자신들을 제대로 인정을 해 주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섭섭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인간적으로 대항을 한 것이다.
그렇다.
주의 종의 입술에서 날마다 神의 말씀이 나오지 않는 것이 문제다.
모든 문제는 목자의 입술과 행동에 神的 권능이 나타나기만 하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쉽게 해결되고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
도무지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는 목사란 자에게
그런 영력의 힘이 없으니까
사람들이 나약해 질 때는 목사님도 한 인간으로만 보여
평가하게 되니까 진실을 이야기하고
바른 삶을 말해도 믿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시간이 흘러 자신들이 너무나 인간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돌이켜 순종하려고 하니까
이제는 자기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주위의 눈길들이 또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모세가 홍해바다를 가르고
여호수아가 하늘의 해를 중천에 멈추게 했다고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여호수아를 神처럼 대했으며
죽은 자까지 살리셨던 예수님에게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절대적인 순종을 했었는가?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여도 사람들은
매사를 걸고 넘어졌고 의심했고 자기들의 뜻대로 되지 않으면
배신하고 불평하고 불만을 토로했었다.
선지자들이 피를 토하며 목숨을 걸고 외쳐도
주의 백성들은 오히려 돌을 들어 치려고 했었고,
누구에게나 해를 끼치지 않고 그저 착하게 살려는 이스라엘을
이 세상은 또 어느 한 날 그들을 그냥 둔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神의 형상이 입혀져도 믿지 못하고
人間的인 아름다운 관계를 맺어도 믿지 못하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답은 하나 밖에 없다.
그래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속여도 믿으면서 살아가고,
슬프게 하고, 오해하고 눈물 흘리게 해도
그래도 진실해야 되는 것이다.
설마 주의 말씀대로 일곱 번씩 일흔 번씩이라도 용서하고
아프면 아픈 대로 당하며 살다보면 때가 되면 알아주지 않겠는가?
설령 못 알아준다고 하면 그렇게 또 살아야 하도록
부름 받은 것이 주의 종들 된 우리의 삶이니
주 앞에서는 그날까지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결국 모든 문제는 주의 종 된 내게 하나님의 형상이
거룩하게 제대로 드러나지 못한 것 때문이니
목자의 삶이란 인간적으로는 참 불쌍하면서도
때로는 어슬픈 성자가 되어야 하니 정말 힘이 드는 사역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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