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
제사(祭祀)를 지내는 일에 대하여 말씀 드리겠습니다.
여자들은 제삿날이 돌아오면 제사에 쓸 그릇을 깨꿋이 닦아놓습니다.
제물을 준비할때는 시장에가서 상하지 않고 굵고 좋은 것으로 시장을 보아옵니다.
조리를 할때는 아이들이 먹고자 해도 제물의 준비가 모두 끝날때 까지는 먹이지를
않습니다.
남자들은 제사날이 돌아오면 머리를 깍고 목욕을 하고 부부간의 합방을 아니합니다.
제단 앞에 서기 직전에도 또 세수를 합니다. 준비된 제물을 전례 따라 진설합니다.
그리고 깨끗한 한지로 지방을 접습니다.
그리고 축문을 지어 둡니다.
이것이 우리의 제사를 지내는 전통적인 예(禮)의 형식입니다.
젯상에는 돌아가신 분의 신위(神位)를 세웁니다. 촛불을 밝히고 향을 피웁니다.
자손들은 모두 신위를 향하여 도열합니다. 제관은 축문을 읽어 혼을 부릅니다.
제관이 혼백의 식사를 도우며 전통적 규범데로 제사를 진행하면 자손들은 모두 제관을
따라서 세 번의 절을 하고 제상을 물리고 신위와 축문을 불살르고 제사가 끝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전통적인 배(拜)의 형식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가문의 제사(祭祀)는 예(禮)와 배(拜)를 다함으로 끝이납니다.
천주교의 제사(祭祀)와 개신교의 예배(禮拜)와 비교해 우리 가족의 전통적인
제사(祭祀)도 예배(禮拜)의 형식을 어느 정도 가추고 있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
다른 종교들도 비슷한 예배(禮拜)의 형식을 가추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상의 모든 인류의 제사(祭祀)와 예배(禮拜)의 대상은
<자기를 찾는 사람에게 상(賞)주시는분>을 대상으로 삼고 있습니다.(희부리 11장)
우리가족의 전통적인 제사와 예배의 대상은 조상(祖上)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제사와 예배의 대상은 조물주(造物主)이신 하느님 입니다.
그런 고로 우리 가족중에 어떤 사람이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제사와 예배의 대상을
조상으로부터 조물주(造物主)이신 하느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천주교인은 제사를 미사로 바꾸는것이고 개신교인은 제사를 예배로 바꾸는것입니다.
종교(宗敎)란 무었입니까?
종(宗)자는 마루 종자입니다. 초가집의 영을 엮어 올린 맨 위의 분수령(分水嶺)입니다.
종(宗)은 어떤 사람의 아버지 할아버지 징조할아버지 고조할아버지....를 뜻합니다.
교(敎)자는 훈계(訓戒)와 교육(敎育)을 의미합니다.
이땅에 고려땐 불교를 조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조선조땐 유교를 조장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문중의 자손들은 할아버지나 아버지로 부터도 불교의 법어(法語)도 유교의
계율(戒律)도 받은바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력서나 가정환경조사서의 종교란에는 언제나 유교(儒敎)라고 적어왔습니다.
우리 아버지 세대는 정월달에 양주에 있는 석굴암에 약간의 시주를 준비하여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세대에선 제사의 절차를 많이 생략하고 겨우 음식이나 차려놓고
제물을 전례(典禮)에 따라 진설하고 제물을 갈아 올리는 순서를 챙기고 세 번의 절을 하는것이 전부였고
제관이 후손에게 다른 고등종교에서와 같이 훈계(訓戒)와 교육(敎育)이 전혀 없는
원시적(原始的)이고 유치(幼稚)한 제사로 전락했습니다.
개신교 예배에선 목사가 설교를 하고 천주교 미사(제사)에선 신부가 강론을 합니다.
신부님의 강론이나 목사의 설교는 교육을 말합니다.
우리 문중의 종교는 실제로는 유교도 아니고 불교도 아니었고 오히려 고대로 부터 전해오는
원시적(原始的)이고 유치(維稚)하고 토속(土俗)적인 종교에 가까운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예루살렘에 성령이 강림하면서 하루에 수천명식 개종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이 기독교인이 된다는것은 가문의 전통 종교를 버리는것 곧 개종을 뜻하는 것입니다.
내가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제사와 예배의 대상을 조상으로부터 조물주(造物主)이신 하느님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기독교의 10 계명에는 <너희는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위에 있것이나 바다와 그 가운데 있는 아무것이나
그 형상을 만들지도 말고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라> 하였습니다.
성서는 사람의 예배와 제사의 대상은 하느님 뿐이라고 단호히 선언합니다.
그래서 그 동안 나는 조상의 제사를 지내면서 마움속에 갈등도 많았습니다.
그 동안 내가 용머리 선산에 가서 절도 하고 부모의 제사에 절도 하기는 하였습니다만 내 조상에게 드리는 제사로-
그 조상으로부터 상을 받을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면서도 제사를 드린 것은 내가 형제와 화합을 위해 현실과 타협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나는 전통제사와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제사와 예배의 대상을 조상으로부터 조물주(造物主)이신 하느님으로 온전히 바꾸겠습니다.
고의적으로 지난번에 참석하지 아니한 어머니의 제사를 대신해서 어머니의 연미사(죽은이를 위한)도
내가 다니는 창동천주교회에 넣었습니다.
아버지 께서는 기독교를 믿지 않으셨고 또 불미스럽게 종신을 하셨읍니다.
그래서 내가 다니는 창동천주교회에 아버지 제사를 대신하여 연미사를 앞으로 넣을것입니다.
형님
요사이 둘째딸 배원이의 6 살난 아들과 2살베기 아들을 이웃집에 데려다 놓고 삽니다.
애비와 어미가 모두 직장에 나가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 7시부터 딸이나 사위가 돌아올 저녁 8시반까지는
안식구가 딸네 집에가서 애들을 키워주고 있습니다.
아내가 두 집을 오고 가면서 양쪽 살림을 하다시피 하니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요사이는 안식구가 가게일을 도와주질 않아 나도 적지않이 힘이 듭니다.
자식들을 키울땐 어떨결에 한 일이라 잘 몰랐는데 손자들을 키우다 보니 어른이 잠시도
어린 생명을 비켜서면 피덩이가 제데로 자라고 살아남지 않을것임을 이제야 깨닫습니다.
이제서야 아버지 어머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생명을 내려받았으니 그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하겠다는 생각을 하고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 부모님의 제사날에 서울의 중앙에 있는 한 성당을 정해서 미사(祭司)를 넣고
그날은 우리 문중이 모두 모여서 양육한 부모를 추모하고 김념하자는 제안을 하고싶습니다.
형님은 부모 제사를 잊지않고 지내려 하지만 식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형님은 이제까지 자식들로 부터 그리고 족하자식들로 부터 해마다 조금씩 고립되어 왔습니다.
이제 동생까지 고립에 나선 셈입니다.
안성 족하들이 홀어머니를 한집에 모시지 않고 돈을 모아 그들의 어머니를 양노원에 보내겠다고 한답니다.
우리 가문의 종교(宗敎) 모호하여 어른들이 그 동안 후손을 제데로 교육하지 못해서 이런
개탄스러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네게 명한데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느님 야회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라는 훈계(신명기 5장16절)를 담은성서가 바로 형님 손이 미치는 곳에 있지 않습니까?
진우도 앞으로 할아버지 제사를 맡아 지낼생각이 없을것입니다.
형님 계속하여 제사를 고집하여 더욱 고립되지 마시고 기독교로 개종하십시요.
그래서 부모의 제사날을 부모를 추모하는 날로,
우리를 양육하신 부모의 감사하는 날로 바꿉시다.
조상의 생명을 전수한 부모를 감사하는 날로 만듭시다.
다른 사람의 권고로 형님도 교회에 나가본적이 있지 않습니까?
형님이나 나나 多石 유영모 씨 뒷집에 살때부터 예수를 믿었더라면 지금같이 살지는 않았을 것을 그랬습니다.


전통 제사와 애매한 관계에 있는 기독교인
정봉옥
2003.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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