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광야....
아브라함
2003.06.16
조회 127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에 나가신 이유는
4000년 인류의 역사가 진행되는 동안 그 누구하나
사단과의 싸움에서 이긴 자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창조한 아담과 하와부터
에덴이란 광야에서 승리를 하지 못하고 사단과의 싸움에서 지고 말았다.
그날 이후부터 사단은 질문을 던졌고
이 질문에 아담의 후예들 중에 그 누구하나 정확한 답을 하지 못했다.

사단과의 싸움은 이기고 지느냐에 따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나누어진다.
이 싸움은 칼이나 총을 든 싸움이 아니라
사단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하는 것이다.
사단은 언제나 이 질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빙자하여
진리와 선으로 가면을 쓴 것으로 나타나기에
언제나 지극히 합리적이며 생산적이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대로
도덕적이며 윤리적 상식적인 것이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은 도를 완성해야만 하는 광야생활이기에
반드시 사단의 질문에서 승리를 해야만 영원한 생명을 소유하게 된다.
따라서 道의 싸움에서 지면 사단의 괴뢰가 되어
죄와 사망의 짐을 지고 영벌에서 벗어 날수가 없게 된다.
아담이후 4000년 동안 그 누구하나 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였고
그 결과 모든 믿음의 선진들은
생명과를 먹지 못해 광야에서 죽어만 갔다.
여기서 우리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광야에 나가
사단과의 싸움에서 둘째 아담으로서
사단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제시함으로
광야에서 승리자가 되어 영생의 길을 열어 주신다.
이것이 새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이루게 되는데,
이 원리는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밤새 천사와 씨름을 하여 이기므로
이스라엘이란 새 이름을 받고
이스라엘의 열두지파의 조상이 되는 이치와 꼭 같은 것이다.

말라기 선지자 이후에 이스라엘이 心田은 황무한 광야와 같았다.
남북으로 갈라진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하나씩 멸망를 당했고
오랫동안 포로생활에 젖어 들다 보니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이방신에게 오염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까 포로기 이후에 돌아온 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전혀 들을 수 없는 자들이 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언제나 그 주변의 환경은 그 사람의 심전과
환경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다면
그 마음에 그러한 것과 같이
반드시 그것은 열매로 나타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고 오랜 시간을 신앙생활을 하였어도
황야와 같이 그의 심전이 썰렁하기만 하다면
그곳은 하나님의 씨가 떨어져
하늘의 열매를 맺는 옥토 밭이 아니라 그의 심전은
온갖 잡초와 독사가 뒹구는 광야일 수밖에 없다

탈무드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버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심전에
인간의 처세술에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합리화 시켜 기록을 해놓은
장로들의 문서일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지 못하니까
하나님의 계시가 중단을 해버리고
바로 그때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랍비들이
교묘하게 짜낸 지혜서가 탈무드이다.
따라서 탈무드에는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도 없고
사람이 살아가는 지혜를 담고 있을 뿐이다.
인간의 지혜에 하나님의 말씀을 슬쩍 담아다가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가르치니
인간적인 처세로 살아가려는 자들에게는
그것을 얼마나 좋아 하겠는가.

그런데 오늘날도 언제나
하나님의 계명과 하나님의 계시가 부족한 자들에게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다가
인간의 그럴듯한 처세술을 적용시켜 나간다.
결국 탈무드의 교훈을 통하여 모두가 진리를 잃어버리니
남아있는 순수한 자들마저 혼합 되기 시작을 하고
정금처럼 빛나야할 선민들의 마음에 인간의 처세술이 들어온다.
신실하여야할 이스라엘은
어느 듯 찌꺼기와 동록이 쓸기 시작을 하고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창기가 되어 간다.
하나님의 선민이 타락을 하면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 타락을 한다.
결국 시간이 흐를수록
이스라엘의 심전은 짙은 암운에 뒤덮히고
그 어느 곳도 진리의 빛을 발하지를 못한다.
저들의 마음 밭은 그야말로 황량한 황무지가 되고야 만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라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타락은 그 시대의 타락이요,
선민이 죽으면 그와 함께한 자들을 죽이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광야로 먼저 내몰아
메시야의 길을 준비 시켰는데
그 세례요한은 그만 광야의 외치는 소리로만 끝나 버렸기에
할 수 없이 우리 예수님은
직접 광야를 나가 하나님의 말씀만을 정확하게 전하므로
봄비와 함께 천둥이 내려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그 소리를 듣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봄을 준비를 하듯이
4000년 동안 죽음의 잠에 취한 민중의 가슴을
각성시키는 우뢰의 소리를 발한다.

광야란 어떤 곳인가.
4000년 동안 하나님과 악이 대치되어 있었던 곳,
영과 육이 대치된 최전방이 바로 광야이다.
이 광야에서
죽음의 공포에 사람들은 떨고 있었고,
절망의 병을 앓고 있었고
캄캄한 밤을 갖고 살다가
사단에게 모든 선지자들마저 피살된 광야이기에
우리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광야를 깨우기 위하여
다시 맨 처음의 광야로 나가신 것이다.
그리고 40일을 금식하면서 4000년을 풀어 나간다.
그리고 악마와 싸운다.
그리고 죽음의 묘지위에
부활의 깃발을 날리기 위하여 처절하기위하여 싸운다.

잊지 말자.
심전을 갈아엎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 밖에 없다.
어떤 말씀인가.
1%의 타협도 용납이 안 되는 완전한 말씀이다.
이런 완전한 말씀으로
사단을 이겨 우리의 심전을 개발시키기 위하여
우리 예수님은 혼자 광야로 나가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광야에서 40일을 금식한 후
말씀으로 4000년을 승리하여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를 따르는 자마다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시키는 心田을 예비해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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