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반드시 축복과 생명을 주신다.
창세기에서 제일 먼저 첫 사람들에게 주신 축복이
생육하고 정복하고 번성하라는 것이요,
마지막 계시록에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주고자 하는 것도 새 하늘과 새 땅의 축복이다.
문제는 이런 축복과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그것을 받을만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함께 주신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연단의 결론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게 하시고
마지막까지 믿음의 정절을 지키다가
주의 순결한 신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하기 위해서이다.
연단의 방법으로는 금을 캐듯이 마음의 연단을 우선적으로 한다.
슬퍼 보이고 즐거워 보이지 않는 징계를 통하든
철저한 환난으로 이어지든 간에
하나님은 우리의 지각을 사용하여 선악을 분별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대로
마지막 결정에서 선한 결정을 내리게 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과 자신의 원함 속에서
밤을 새워 땀이 핏방울이 될 때까지
기도하며 고민하며 깊은 딜레마 속에 빠졌었다.
그러나 마지막 주님의 결정은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으로 결정을 내린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어떤 문제를 가지고 고민을 하며 밤을 지새운다.
또 어떤 이는 기도하면서 결정을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대게는 전부가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결정보다는
그 마지막의 결정을
자신의 사심과 사유욕을 버리지 못하는 결정을 한다.
바로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많은 고민 후의 결정이
자신의 유익을 포기한 결정이 되어 버리면
비록 그 당시에는 슬퍼 보이고 즐거워 보이지 않으나
결국에는 세상이 빼앗지 못하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지만,
자신의 유익을 버리지 못한 결정을 하게 되면
처음은 좋은 것 같으나
그 결국은 반드시 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기도를 들어주실 때까지 연단하셨다고 했고
이스라엘은 지금의 현재 어려운 삶을 통하여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귀중한 줄을 알고 끝 날에는 돌아와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게 하기 위하여 연단을 받는다고 했다.
주님은 많은 주의 사람들이 연단 받는 것에 대하여
이세상이 마지막이 될 때에 정결케 되며
희어지게 하려는 것 때문에 작정된 기한이 있다고 하셨고
시인은 하나님이 내 이름을 높이 두시는
응답이 있기 전 까지는 연단을 쉬지 않는다고 했다.
바울은 자기에게 얼마나 많은 연단이 있었든지
살 소망이 끊어질 때까지라는 말을 몇 번이나 썼다.
어떤 이의 시련은 교회의 성장에 지장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는 그토록 많은 시련을 겪고 나서도
그것이 영광으로와 부딪히지를 못하는 아픔이 되기도 한다.
잊지를 말자.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연단의 끝은 반드시 생명과 평안이다.
그래서 이것을 아는 자들은 환난과 연단이 깊어져도
소망 중에서도 즐거워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어떤 경우에라도 쉬지를 않는다.
힘이 들 때마다 먼저 이 길을 끝까지 걸은
앞선 믿음의 조상들을 생각하자.
내게 주어지는 영광을 기억하여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세워 나가자.
스가랴는 하나님 앞에 온전한 자는 어떤 환난의 바람이 불어와도
하나님의 이름만은 놓치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
주의 시험과 연단을 잘 극복하게 되면
반드시 그에게 맞는 몇 가지 축복된 결과가 임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자기 백성으로 삼으려고 하는
연단과 시험을 부름 받은 자들이 반드시 이것을 극복하고 나면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이 깊어지고
바라는 소망이 이루어지며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예하게 되며
욥처럼 갑절의 축복을 반드시 받게 된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어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
하늘의 기업을 소유한 왕 같은 제사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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