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이후 모든 인간들은 성전 꼭대기에서
곤두박질하며 죽음의 존재로 떨어진 존재자들 이었다.
제 위치에서 추락한 모든 인간은
그 때부터 도의 길을 걸을 수 없는 존재가 된 것이다.
잊지 말자.
인간이 제 위치를 떠나면
산 자의 종교가 죽은 자의 종교가 되어 버린다.
산 자의 종교는 생명과를 따먹고
멜기세덱 에녹 엘리야와 함께 도의 맥을 따라
죽지 않고 승천하는 종교요,
죽은 자의 종교는 선악과를 따먹고 죽어서
영혼이 천당에 간다는 형이상학적인 종교이다.
아담이후 모든 인간은 죄로 말미암아 죽었기에
사람들은 죽은 자의 종교를 신봉할 수밖에 없었고
죽어서 천당을 간다는 헛된 교리를
가르칠 수밖에 없고 믿을 수밖에 없다.
성경 어느 곳에도 죽어서 천당을 간다는 말씀은
한 군데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오늘날의 모든 교회는
다시 오시는 예수를 만나 살아서
들림 받을 말씀을 하나도 가르치지를 않고 그런 소망도 져 버린 채
교회마다 죽어서 천국을 간다고 교리를 가르치고 있고
또 사람들은 그런 것을 헛되이 믿고 있다.
하지만 잘 기억하라.
죽은 자들은 죽음의 교리를 가르칠 때
산 자들은 산 자의 말씀을 가르쳐야 말씀이 영원함같이
그것을 믿는 자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고 그 나라의 주인공이 된다.
제발 성전 꼭대기에서 추락한
죽은 자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지 말고
성전 꼭대기에서 추락하지 않으신 예수의 눈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자.
죽은 자의 눈은 절대로 하나님을 볼 수 없고
하늘나라를 소망할 수가 없다.
누가복음 20장 38을 보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고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산 자의 하나님이시기에
죽은 자의 자리, 추락한 자의 자리에서 보면
성경속의 숨겨진 도의 비밀은 절대로 알 수도 없고 드러날 수도 없다.
죽은 자의 종교를 믿는 한
그는 아무리 열심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여도
그것은 주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열심과
그들의 자존심은 얼마나 크고 강했는가.
그들은 자기들만이 하나님을
가장 잘 바르게 인식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들더러
너희는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모르고 오해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니까 저들은 헛된 것, 잘못된 것을 믿고 있으면서
제일 잘 알고 제일 잘 믿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들이 헛된 것을 믿었다면 무엇을 믿었는가.
바로 더러운 귀신을 섬기고 있었다는 것이다.
더러운 귀신에게 속아서 더러운 귀신의 영을 받아
그것을 섬기고 있으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착각을 하여 헛수고만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바로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들처럼 성경을 오해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잘못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제일 잘 알고 섬긴다고 착각을 하고 있다.
제발, 우리는 날마다 내가 선 믿음의 자리가
본래 인간이 서야 될 자리인지 물으면서 정정하며 살아가자.
그래서 내가 선 믿음의 자리가
하나님이 세워주신 본래의 존재 자리가 아니면
과감하게 결단을 내려 우상의 처소를 박차고 나가
참 하나님의 성전에 서야만 한다.
이것이 종교혁명이요,
성전 꼭대기에서 추락하지 않은 주님의 뒤를 따르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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