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타락하여 사단의 참소에 걸리는 자는
사심과 사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기 본위의 사람들이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언제나
마음이 가난하고 무소유하기에 사단이 훔쳐갈 것이 없다.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제 위치 이탈의 잘못인데도 사람들은 겁 없이 뛰어 내린다.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 됨을 성전에서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음을 통해 보여주어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명성을 얻는다.
알다시피 하나님이 원하시는 자리를 이탈해도
그 순간에는 다치거나 아프거나 망하지 않는다.
교회에 아픔을 주고 떠나가도
시험이 들어 예수를 부인하고 안 믿어도
오히려 먹고 마시는 문제가 더 잘 풀리고 여유가 있고
자신의 삶에는 기름짐이 더 많아 지니까
오히려 사람들은 그를 영웅 취급하고
잘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더 잘 따르니까
거의 모든 사람들은 자기 위치에서
내가 벗어나고 추락했다는 것을 망각한다.
그러나 사단은 바로 이 문제를 노린다는 것을 기억하자.
즉 하나님의 성전 된 자기 위치를 떠나는 것이
죽음이요, 타락이요, 구원의 상실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자신을 떠받들어주고
자신의 삶에 아무런 이상이 없으니까
스스로 자기가 제 위치를 떠난 사실임을 모르게 하는 것이
사단의 절묘한 덫이요, 올무이다.
문제는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진 자들이
예수를 기독교의 교주,
즉 특정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창시자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기독교 창시자가 예수라는 말은
우리기 교과서에서 배운 그대로 기독교가 진리가 아니라
세계 4대 종교의 하나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기독교의 교주가 아니라
예수님은 만유를 창조하신 말씀 그 자체이기에
온 우주의 머리 모든 생명의 근본이시다.
제발 성전에서 떨어진 자들의 거짓 복음에 속지 말자.
어리석은 사람들은 기적을 바란다.
광야에 유리방황하는 자들은 늘 기적을 사모하며 살았다.
그러나 기적을 보고 체험한 자들이
하나님만을 온전히 믿었는가.
예수님이 수많은 기적을 행하여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거부했고
가장 많이 기적을 행한 벳세다, 가버나움은
점점 더 큰 기적을 바라면서도 예수를 인정치 않는다.
기적은 또 다른 기적을 요구한다.
그래서 예수의 기적을 보며 따라 다닌 자들은
오히려 더 큰 기적을 요구하다가 그것이 관철되지 않자
예수를 모두 배신하여 떠나버리고 만 것이다.
자, 문제는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얻으며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을 사람들은 기적으로 여기나
예수님은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
주의 복음이 전파되면 당연히 일어나는 의의 열매라는 것이다.
그리고 기적이란 단 한가지 밖에 없는데
그것은 바로 부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이 가득한 하나님의 나라는 기적이 없다.
그곳에는 모든 지체부자유한 자들도
슬픔 애통 사망도 희락의 기쁨으로 가득 차
온전함으로 오직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만 있을 뿐이다.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벗어난 것만이 우리를 자유케 하지
기적으로서는 절대 인간을 구원할 수가 없다.
그러나 언제나 제 위치를 떠난 교만한 자들은
하나님을 시험하고
사단이 주는 표적으로서 모든 자들을 미혹한다.
제발 우리는 끝까지 성전 된 우리 심전을 가꾸며
예수의 말씀 안에서 추락하지 말자.
피조물이 제 분수를 망각하면
그 순간부터 성전에서 추락하게 되고
그러면 흑암에 빠져 유리방황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인간의 위치를 하나님의 성전의 위치에 두려고 창조했다.
즉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성전이 곧 우리의 위치이다.
따라서 잊지 말자.
하나님의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그 순간부터 그는
아무리 기적을 행하며 살아도
그는 우상의 처소 귀신의 처소로 타락하고야 만다.
그가 행하는 기적이란 것 자체가
하나님이 허락한 표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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