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설교)
소망
2003.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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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
요한계시록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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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미국에서 신학교를 다닐 때 섬긴 교회는 작은 슈퍼마켓을 개조해서 만든 예배당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느 집사님 가족이 처음 그 교회를 나올 때 그 집사님의 아들이 예배당을 한번 쳐다보더니 아빠에게 ‘아빠 이게 교회예요?’ 이렇게 물어보더라고 합니다. 교회라면 당연히 십자가 탑이 있어야 되고 또 교회 같은 건축물 이여야 된다고 생각하는 소년에게 슈퍼마켓을 개조해서 만든 예배당은 교회처럼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를 교회 되게 만드는 것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혹시 유럽에 여행을 가시면 수백 년 전에 지은 웅장한 교회당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의 어느 도시를 가던지 그 도시 중심지에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고색창연한 예배당이 있습니다. 그것을 예배당으로 부르기에 너무 아깝습니다. 그만큼 예술적이고 또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건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일날 그 예배당에 들어가서 보면 정작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고 그 예배당에 출입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손에 카메라를 들고있고 그 건물을 구경하기 위해 찾아온 여행자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수백 년이라는 세월이 지난 이후에 그 웅장한 건물들은 더 이상 살아있는 교회로서의 기능이 아니고 이제는 박물관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을 우리가 주목 해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배당 건물을 지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대에는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을 주님께 인도했던 그런 영적인 권세가 살아있던 교회라고 할지라도 그 영적인 권세를 반드시 유지하리라는 보장은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가 이 땅에 존재 한지 참 오랜 세월, 유구한 세월을 우리가 살아왔습니다 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각 사람이,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고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각자가 발견하고 그리고 찾아야 되는 것처럼, 교회도 2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각 시대마다 각 교회마다 교회가 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찾아야 되고 믿음을 지켜야 되고 그리고 거룩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 나라의 교회가 한때는 웅장하고 세계적인 교회고 세계적인 설교자와 세계적인 교회 음악과 세계적인 그런 열정을 가지고 있었던 그런 교회라도 앞으로 100년이 지나고 200년이 지나고 우리의 후손들이 대한민국의 교회를 기억할 때 과연 그때까지 살아있고 생명력을 유지하는 교회로 기억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 조상이 한때 그들의 신앙의 열정으로 지었던 유물을 보게 될 것인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교회는 지금 주님이 함께하시는 교회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 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를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됩니다. 우리가 교회에 대해서 담론할 때 많은 교인들은 그것이 전문적인 목회자들의 관심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 서점을 가보면 일반 교인들은 기도라던가 경건이라던가 이런 관련 서적들을 사지만, 정작 교회에 관계된 서적은 그들의 관심 분야 밖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목회자들의 관심사고, 교회 철학이라던가 목회 방법 이라던가 이런 것은 전문적으로 교육 받은 목회자들이 맡아야 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오늘 본문에 성령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읽어보면 여기에는 어떤 목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떤 목회에 대한 지침이 아니요, 목회 철학이 아니요, 어떻게 하면 당대에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흥시킬 수 있는가, 교회 성장에 필요한 지혜를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교회주시는 말씀은 교회 지도자에게만 주시는 말씀이 아니고 모든 성도들이 들어야 되는 말씀이고 그들이 배워야 될 말씀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대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은 모든 성도들이 알아야 될 말씀 이예요.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가 교회 되게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이냐 생각을 해보면 첫째는 성령과의 교제입니다.’ The fellowship with the Holy spirit’ 성령과의 교제입니다. 우리는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령이 계시네 할렐루야 함께 하시네 좁은 길을 걸으며 밤낮 기뻐하는 것 주의 영이 함께 함이라’ 그러나 여러분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믿는 것 뿐만이 아니고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것 뿐만이 아니고 성령이 하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2장으로 넘어가면은 똑같은 문구가 되풀이되는데, 2장 7절 말씀을 보면은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그랬습니다. 우리가 성령이 계시다는 것을 믿어야 되는 것 뿐만이 아니예요. 성령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 뿐만이 아니고 성령이 교회에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돼요. 그것이 교회의 생명줄 입니다. 다른 것은 없더라도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만 있다면 그 교회는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성령이 주시는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면 교회 운명은 사울 왕의 운명과도 같이 됩니다. 사울 왕은 왕입니다. 임금입니다. 성공한 것처럼 보여요. 힘이 있습니다. 권세가 있습니다. 유명합니다. 절정에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의 음성을 더 이상 듣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강팍 해졌습니다. 마음이 어두워졌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그를 포기했습니다. 그래서 가장 큰 전투를 앞두고 하나님이 꿈으로도 말씀하시지 않고 우림이나 둠빔으로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가 누구를 찾아갑니까? 박수무당을 찾아갔습니다. ‘내가 내일 전쟁에서 어떻게 될 것이냐?’ 물어봤더니 ‘당신은 내일 죽습니다.’
반대로 다윗 왕은 죄를 범했어요. 음란했습니다. 간음을 했습니다. 도덕적인 문제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큰 스캔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선지자가 찾아가서 ‘그 사람이 당신이요’ 했을 때 다윗은 그것이 성령이 주시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것이 다윗 자신을 살린 것 뿐만이 아니고 다윗의 왕조를 살렸습니다. 국가를 살렸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뿐만이 아니고 그리스도인이 살 수 있는 길은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 하시는 말씀을 들을 찌어다’ 듣는 것이 무엇보다 나아요? 제사보다 낫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기름진 것 보다 낫다 그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국은 그리스도인 개인 뿐만이 아니고, 교회가 이 험한 세상에서 영적으로 강건하고 교회가 살아 남고 부흥하고 교회가 강건할 수 있는 비결은 어떤 테크닉 이라던가 노하우라던가 이런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결국은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온유함과 믿음에 있는 줄 믿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 되기 위해서는 사람의 말과 세상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이전에 먼저 성령이 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하고 많은 요구를 하고 교회에 대한 많은 비판을 합니다. 교회가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남의 교회가 이것을 하니까 우리 교회도 이것을 하자, 교회에 대해서 사람들이 많은 말을 합니다. 그러나 그 말도 들을 필요가 있겠지만 그것보다도 먼저 성령이 뭐라고 말씀하시는 지를 귀를 기울여야 됩니다. 성령이 하시는 말씀만 듣고 순종하면 그 교회는 반드시 거룩한 교회요 강건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이 장단에 맞추고 저 장단에 맞추는데, 정작 성령이 하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면 결국은 그 교회는 세속적이고 인위적인 교회가 될 것이고 사람들의 기호는 맞출 수 있을 지 모르지만, 거룩한 주님의 교회는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교회 되게 하기 위한 첫번째 가장 중요한 조건은 성령과의 깊은 교제와 성령과 동행하고 그 분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건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것은 그 중심의 순수함과 신실함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뿐만이 아니고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시는 성령의 말씀을 읽어보면 여기에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어떤 기술적인 것이라던가 무슨 방법론이라던가 이런 것이 등장하지 않은 것 뿐만이 아니고 교회의 어떤 실적에 대한 말씀도 없습니다.
제가 교육 전도사로 있을 때 한번은 목사님이 주관하시는 교역자 회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 파트를 맡은 교역자들이 전부다 ‘저희 부서는 몇 명이 나옵니다.’이걸 보고 해야 되는 시간입니다. 아주 괴로운 시간 이예요. 왜냐하면 다 듣고 있는데 ‘우리는 좀 줄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얼마나 창피합니까? 실적을 발표해야 되는 시간이니까. 실적이 좋다고 보너스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래서 제가 그 당시 대학부를 맡고 있었는데 목사님에게 ‘그 동안에 좀 줄었습니다.’ 그랬더니요 목사님이 화를 내면서 그 이유가 뭔지 당장 알아내라 그러셨어요. 얼마나 제가 당황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만약에 예수님이 이러한 회의를 주관하실 때 예수님이 실적에 대해서 물어보실 것 같습니까? ‘너희 교회 지난 주에 몇 명 나왔냐?’ 이걸 물어보실 것 같습니까? ‘너희 교회 지난 해에 몇 명 세례 주었냐?’ ‘너희 교회 지난 주 헌금 많이 나왔냐?’ 주님이 이걸 물어보실 것 같습니까? 아니예요.
오늘 본문 뿐만이 아니고 나온 성경구절을 보면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주님 주시는 말씀 중에 그들의 어떤 외적인 실적,performance, 여기에 대한 언급이 없어요. 주님은 무엇에 대해서 알고 싶으시냐, 그들의 중심에 대해서 물어 보시더라 는 겁니다. 얼마나 그들이 믿음을 지키고 있고, 많은 환란 중에서 이들이 순수하고 환란 중에도 믿음을 잃지 않고 그들이 뜨거 우냐 차가 우냐 이걸 물어보고 계시는 것이지, 외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주님이 물어보시지 않습니다. 물어보시지 않는다는 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주님의 관심시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는 교회에 대해서 생각할 때 자꾸만 실적과 숫자와 성과와 이런걸 물어보지 않습니까? 아마 여러분도 남의 교회에 대해서 대화할 때 제일 먼저 물어보는 것이 너희 교회 교인이 얼마냐 물어볼 겁니다. 우리는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았어요. 그런 식으로 그 교회를 평가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숫자가 그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예요. 한국의 교회는 예전처럼 가난하지도 않고 작지도 않고 힘이 없지도 않습니다. 이제 한국의 교회는 커졌습니다. 물질을 소유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명예직이 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앞에 섰을 때 교회가 초라해 보이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교인 숫자가 많다고 사람들이 존경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가 숫자는 많은데 사람들이 기대하는 어떤 인격을 보여주지 못할 때에는 그것이 오히려 수치거리가 되더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사람들이 욕하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어떤 분이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면서 교인이 열명 되었을 때에도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데, 백 명이 되었을 때에도 사랑하지 못하더니 만 명이 되어서도 사랑하지 못하더라 그건 주님이 기뻐하는 교회가 아니예요. 세상에 칭찬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아니예요. 여러분 그런 교회를 다니고 싶습니까? 아무리 교인이 많아도 서로 반목하고 서로 화목하지 못하고 그런 교회가 주님에게 영광이 될 것 같습니까? 여러분에게 위로가 될 것 같습니까? 외형적인 것으로는 신앙을 알 수도 없고 교회도 외형적인 것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주님은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십니다. 할렐루야
그렇기 때문에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것은 결국은 그 중심에 있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실한 믿음을 가지고있는지,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지, 여기에 교회가 교회 됨의 열쇠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가 교회를 교회 되게 합니다. 초대교회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너에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라!’ 했을 때 앉은뱅이가 일어날 수 있는 영적인 권세를 소유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그 내게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주님의 은혜예요. 은과 금이 없어도 상관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만 함께 하면 교회가 교회 될 수 있고 교회가 교회 역할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회가 세계 선교를 한다고 하면서 자꾸만 돈으로 하려고 해요.돈의 힘으로 선교를 하려고 합니다. 돈만 있으면 선교를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 언제는 교회가 돈이 없어서 선교를 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그게 아닙니다. 결국 목회나 전도나 선교나 사회봉사는 돈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있으면 필요한 것을 하나님이 허락하실 것입니다. 그것이 물질이면 물질, 사람이면 사람, 그러나 은혜가 없는 상황에서 물질과 사람의 힘으로 선교를 하려고 하면 그건 사람에게 감동을 주지 못하고 생명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교황과 대화를 하면서 교황이 ‘이제 교회는 더 이상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고 말할 수 없다.’ 그랬더니 아퀴나스가 ‘그러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서라..는 말도 할 수 없습니다.’이렇게 말했다고 하지 않습니까?
교회를 교회 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언제부터 은혜가 떠나가느냐? 교회가 교만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은혜가 떠나가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교만해지는 것은 목회자가 교만해지는 부분도 있지만 성도들이 교만해지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경계해야 되는 것은 교회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교만이 되어서는 안돼요. 남의 교회와 비교하면서 ‘너희 교회는 그러냐? 우리 교회는 안 그렇다. 우리 교회에서는….’뭐 이런 식으로. 교회에 대해서 자긍심을 갖는 가는 것은 그건 좋은 일이예요. 여러분 자녀가 학교에서 교회 다닌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는 것 좋겠습니까? 그건 아니죠. 그러나 그것이 교만으로 발전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대 아무개교회’ 이런 식으로 나가서는 안됩니다. 혹이라도 ‘대 무슨교회…’ ‘대’라는 글자를 부칠 수 있는 분은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의 은혜 이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므로 자랑하는 자는 예수 안에서 자랑할 것이다’ 그랬어요. 교회가 갖고 있는 건물을 자랑하지도 말고, 교회가 갖고 있는 프로그램을 자랑하지도 말고 자랑하려면 주님만을 자랑 해야 되요. 그래야 거기에 순수함이 있는 것입니다. 순수한 사람이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오늘 본문 13절 말씀에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화롭게 되신 예수님. 이 땅에 예수님이 계실 때에는 평범한 사람처럼 보였죠. 그러나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예수님은 더 이상 그런 인자의 모습이 아니고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영화로운 모습 이예요. 그런데 그 분이 어디 사이에 거니십니까? 촛대 사이에.. 2장 1절을 보면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그랬어요. 예수님은 촛대 가운데 다니십니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에 예수님이 다니십니다.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어요. 그러나 교회는 사람들만의 모임이 아니고 주님이 함께 계시고 주님이 다스리시고 주님이 소유하고 계십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라 그랬어요.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의 숫자입니다. 그 말은 아시아의 그 당시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인 것 뿐만이 아니고 교회 시대의 일곱 단계를 말하는 것이고 모든 종류의 교회를 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모든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이런 교회, 저런 교회, 카톨릭 교회, 개신 교회, 동방 정교 교회, 모든 교단과 모든 신앙의 스타일과.. 이런 교회의 주인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교회의 주인 이예요. 사람이 주인이 아닙니다. 목사가 주인이 아니요, 장로가 주인이 아니요, 주님이 교회 주인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는 한은 주님의 교회가 될 것이지만 그것이 아니고 사람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사람이 터줏대감이 되고 사람이 교회를 좌지우지하려고 하면 그때부터는 사람의 교회가 됩니다. 이 시대에 말도 많고, 글도 많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말씀에 목말라 하고 교회가 많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교회를 찾고 있고, 참된 교회, 거룩한 교회, 주님을 만날 수 있는 교회를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면 저희 교회도 그러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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