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제 좀 숨 쉬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끔 생각합니다. 나는 로또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1979년생, 다섯 아이의 아버지입니다.
1982년, 저는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집안 형편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벽돌을 나르는 아르바이트를 했고,
학창 시절 방학마다 공사 현장에서 한 달 내내 일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대학에는 가지 못했습니다.
대전역 근처에서 PCS와 삐삐를 판매하는 곳에서 일하다가 군대에 갔고, 운전병으로 복무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친구들이 대학과 사회에서 각자의 삶을 시작할 때,
저는 대형면허를 가지고 있었기에 크라운제과 물류팀에 입사해 큰 트럭을 몰았습니다.
형과 누나는 각자의 자리에서 삶을 살아갔고,
저는 몸이 편찮으셨던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며
가정을 책임지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친구들은 월급으로 자신의 삶을 시작했지만,
제게 월급은 자연스럽게 생활비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늘 미안해하시며
한 달 점심값만 따로 챙겨주셨고,
저는 그 돈을 아끼기 위해 도시락을 직접 싸서
물류창고에서 점심을 해결했습니다.
그렇게 아껴 모은 돈으로
정말 힘들어하던 친구에게 은행에서 돈을 찾아 건네주기도 했고,
군 입대를 앞둔 교회 동생들에게 삼계탕을 사주기도 했습니다.
주류 배달, 대리운전 등 여러 일을 하다가
27살 여름쯤 처음으로 금형 기술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늦은 나이였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쉬고,
평일 밤 11시까지 일한 뒤
기숙사에 올라가 새벽 1시까지
일본 마키노 금형가공기계 책을 외웠습니다.
1년 만에 책 세 권을 통째로 외웠고,
결국 실력으로 인정받아
2006년 11월, LG전자 관련 회사로 입사하게 되었습니다.
자녀 대학 학자금을 비롯한 복지도
대기업과 동일한 수준이었습니다.
모아놓은 돈은 없었지만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확신 하나로
입사 한 달쯤 지나 여자친구에게 프로포즈를 했고,
결혼했습니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대기업의 현실 속에서
주일 예배를 자주 지키지 못하게 되었고,
아들에게 신앙을 삶으로 가르치지 못한다는 고민이 커졌습니다.
결국 어느 날 기도원(논산 도곡기도원 양예자 원장님 시절)에 들어가
3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마지막날 마지막때
그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목숨 걸고 지키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과감히 버릴 때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을 기도원 원장님을 통해 듣게 되었고
저에게 하시는 말씀이라는 마음의 확신을 얻었습니다.
현실은 두려웠습니다.
총각 때와는 달랐고,
이제는 가장이었습니다.
다시 어려워질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컸지만
저는 믿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대전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그 후 다시 예전처럼 힘든 일(방문판매,육가공, 대리운전...)을 하며 버텼습니다.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2년쯤 지나
LG전자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재입사 제안이었습니다.
저는 단 하나,
주말 휴무 보장만을 조건으로 이야기했습니다.
돈도 아니고 직급도 아니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예배드리는 삶,
그것만은 지키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결론 없이 끝났습니다.
그날부터 저는
40일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40일 동안 아무 연락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정확히 40일째 되는 날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결국 저는
그 조건으로 다시 대기업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몇 년 후,
저를 처음 스카웃했던 상사와의 갈등으로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억울했지만
10년 넘게 쌓아온 금형가공 노하우를
PPT 50페이지로 정리해
회사에 남기고 나왔습니다.
그리고 2020년,
평택시청 소속 환경미화원이 되었습니다.
새벽 5시부터 오후 2시까지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오후 3시부터 밤 10시까지는 물류창고에서 일했습니다.
그렇게 두 가지 일을 하며
다섯 아이를 키웠습니다.
연 수입은 8천 정도였지만
그 돈은 편하게 번 돈이 아니라
몸을 갈아 넣어 만든 돈이었습니다.
결국 몸이 무너졌습니다.
뇌경색 진단을 받았고,
간과 폐, 허리까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본업만 하며
아르바이트를 쉬고 있지만
6월부터는 다시 투잡을 고민해야 하는 현실입니다.
고2, 중3 아이들이
이제는 영어학원에 보내달라고
조심스럽게 말합니다.
다른 아이들은 당연하게 다니는 학원을
우리 아이들은 부모 사정을 알아
그동안 말도 못 하고 참고 있었습니다.
공부해보겠다는 아이들에게
안 된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부자가 되고 싶다는 욕심보다
이제는 좀 숨 쉬고 싶습니다.
생계비 걱정을 덜고 싶고,
아이들 학원비 앞에서 무너지지 않고 싶고,
허리를 펴고
한숨 대신 웃고 싶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끔 생각합니다.
나는 정말
로또를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기회가 될 수 있다면
말하지 못했던 제 삶을
숨기지 않고 꺼내고 싶습니다.
저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오래 버틴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여기까지였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조금 더 안정된 삶을 주고 싶습니다.
아버지로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좀 숨 쉬고 싶습니다
로이레아
2026.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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