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
송아브라함
2025.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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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소감 2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 사랑) 12 07 2025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 3:16

저는 1958년 6월5일 전북 고창군 무장면 시골 마을에서 농부의 4남3녀중 4남으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어려서 고아가 되신 분들인데 검소하게 부지런히 일하여 부를 이루어 자수 성가한 농부입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공부를 잘 해서 형님이 주변 마을에서 처음으로 대학교를 갔습니다 누님도 공부를 잘 해서 소문이 나고 도시로 중학교를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바로 위 형은 체격이 좋고 힘은 장사인데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고 산에 가서 풀뿌리 캐고 새집을 찾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저도 형과 함께 그렇게 산에 돌아 다니고 저수지나 개울에서 물고기 잡고 산에 가서 도라지도 캐고 버섯도 따며 자랐습니다 저의 성격이 내성적이고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아서 선배들을 두려워 하고 동기들 가운데도 괴롭히는 애들이 있어서 학교는 싫어했습니다 저는 고구마를 좋아하고 많이 먹었습니다 저는 인생의 의미도 모르고 목적도 없었지만 고상하고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하루는 친구와 하늘을 보며 하나님이 계시면 좋겠다고 이야기 한적이 있습니다 중학교를 졸업 하자 형님이 전주에서 약국을 하고 있어서 전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이사를 하여 도시에서 시험을 보게 되어 아는 것이 없는 저는 고입시험에서 낙방하고 재수를 하였는데 공부가 습관이 없어서 그리고 하는 방법도 몰라서 놀며 1년 동안 키만 16센티나 자라서 키가 큰 사람이 되었습니다 저는 고등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실패를 만회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자 희망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뿐이고 학교를 다니기 싫어서 집을 나가 광주에 있는 친구를 찾아 왔다가 3일간 지내보니 집 나가 사는 것도 쉽지 않아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선생님에게 매 10대를 맞고 학교를 다시 다니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저는 분수에 맞는 생각이나 건전한 생각을 못했습니다 지방대학에 갈 충분한 실력이 되는데 정리하고 마무리를 못하여 시험에 실패했습니다 재수 하면서도 어머니가 무릎이 아파서 청소 하는 것을 힘들어 해서 큰 집 청소를 제가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경기도 안성 농업 전문 학교에 갔습니다 이곳이 저에게 편했고 국립이라 학비가 싸고 교수님들이 대부분 서울대학교 출신으로 실력이 있으시고 잘 가르쳐서 좋았습니다 그러나 1학년 2학기에 방황을 하고 시험을 보지 않아서 D학점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나 2학년 때는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B학점 이상 점수를 받고 기사 시험에도 합격 했습니다 저는 대학에 가서 신문을 2개 이상 꾸준히 읽고 동화 책부터 문학 서적 철학 서적 유명한 사람의 자서전과 에세이까지 독서를 열심히 했습니다 특히 소크라테스에 매료 되어 책을 읽으며 저도 밤에 묵상을 하고자 시도해 보기도 했습니다 경제학을 공부 할 때 아담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감동되어 경제에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전문 학교를 졸업하고 원광 대학교 원예과 3학년에 편입 했습니다 친구들은 제가 머리가 좋아서 대학원에 가고 교수가 될 것으로 생각 했습니다 저는 고등학교에서는 잘 생겼다고 별명이 찰톤 헤스톤 이었고 대학에서는 아는 게 많다고 송박사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저는 열등감과 자의식으로 여자들은 처다 보지도 못하고 사람 앞에서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묘를 만드는데 혈기를 부리다 허리를 삣긋 하게 되었습니다 허리를 다쳤으면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지혜도 부족하여 등산 하다가 적은 나무를 점프 하다가 다시 허리가 삐끗하여 체중이 9킬로가 빠지고 완전히 무기력 하게 되었습니다 무모하게 지원하여 군에 갔습니다 그런데 군대에서 하나님의 예비 하심을 보았습니다 훈련소에 갔는데 조교 중 한사람이 대학 동기였습니다 허리 아픈 저에게 큰 도움이 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훈련 받다 알게 되었는데 제가 몸이 둔하여 총검술과 사열은 잘 못하는데 군화 끈 메기는 빠르고 사격은 아주 잘 했습니다 사격 시험에서 12발중 11발을 적중 했습니다 군에 있으면 특수 환경이다 보니 성적인 죄에 노출 됩니다 저는 분명한 가치관도 없어서 죄를 많이 범하였는데 동네 친구가 성적인 범죄를 자랑처럼 이야기 해서 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군대에서 몇 번의 썸싱은 없었으면 하고 지워 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일들이 있습니다 대학 4년에 복학하여 조경기사 1급 시험에서 합격 했습니다 그러나 허리가 좋지 않아 건강이 나쁘고 그냥 있기도 고통스러우니 사회에서 경쟁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가족들에게 상처 주지 않고 죽는 것이 상책이라 생각하고 산에 가서 뛰어 내려 죽으려 했습니다 그도 쉽지 않고 삶에 미련이 있었는지 집에 돌아와 집에서 누워 지내며 기독교 방송 새롭게 하소서 듣다가 금식 기도원에 가서 기도 하다가 하나님이 계시면 살고 그렇지 않으면 금식 하다가 죽겠다는 생각으로 오산리 금식 기도원에 갔습니다 85년3월11일 새벽 기도 소리에 깨어서 저도 무릎을 끊었습니다 그런데 요한 복음 말씀이 생각이 나고 요한 복음 3장 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말씀이 저를 감동 시켰습니다 한 마디 말씀으로 빛을 창조한 하나님께서 연약하고 쓸모 없는 저를 위하여 그 아들을 주었다고 생각하니 이는 우주적인 사랑이요 제가 감당 할 수 없는 큰 사랑 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침 말씀으로 김상호 목사님께서 요3:16 말씀을 7일간 똑 같은 말씀을 전하시는데 저 한 사람을 위하여 전하는 것 같아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독생자를 주신 사랑에 감격하여 눈물을 많이 흘렸습니다 7일 동안 물만 마시며 금식 했지만 어렵지 않았습니다 성령이 강하게 임하여 몸이 뜨거워 지고 비둘기처럼 임하기도 했습니다 열왕기하 4장 엘리사가 수넴 여인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니 아이를 낳았고 아이가 죽자 기도하니 살아 나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니 믿어 졌습니다 그리고 저의 허리 아픈 문제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능히 해결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은혜를 받고 집에 돌아와 간증을 써서 가족들과 아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진흥청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전문직 일을 시작 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서 반사로 열심히 봉사하다가 우리 모임 UBF 교회를 알게 되어 창세기 말씀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여 말씀에 기초한 믿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목자님의 소개로 믿음의 결혼을 하였습니다 동역자가 믿음 훈련을 잘 받은 목자라 저에게 과분하다 생각하여 감사함으로 영접하고 2주후에 믿음의 결혼을 하였습니다 결혼하고 저는 매우 행복하였고 부모님들도 좋아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자 집을 교회 가까운 곳에 얻어서 살며 먼 길을 통근 하였습니다. 당시는 토요일도 일하고 항상 일이 많아서 바쁘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습니다 토요일 저녁에 학사들 성경 공부를 하고 소감 발표를 하며 영적인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는 소감 쓰는 것을 좋아 했지만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어서 쓰지 못하여 훈련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 번은 옥상에 올라가서 밤마다 100번씩 7일간 큰 소리로 하나님을 믿으라 외치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저희 집을 오픈하여 군산대 개척을 섬기며 주말에는 군산대 학생들이 저희 집에 와서 함께 살았습니다 후에 전북대 의대를 섬기게 되었는데 의대생 4명이 저희 집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저는 집을 오픈하여 교회에 손님이 오면 자주 섬기는 일을 이 때부터 하였습니다 저는 시간이 없는 중에도 버스 속에서도 젊은 사람을 만나면 전도를 하고 교회에 초청 하였습니다 여름 수양회 때는 저는 무단 결근하고 수양회에 참석하고 후에 상사에게 꾸지람을 듣고 시말서를 써야 했습니다 결혼 후에 1년이 지나자 아들이 태어났고 3년 후에는 딸이 태어났습니다 저의 어머니가 고혈압으로 쓰러지시고 1주후에 돌아 가셨습니다 어머니 임종시에 저는 직장에 가서 아내가 가서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 하자 어머니가 고통스러워 하다가 평안하게 돌아 가셔서 가족들에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제가 직장에 사표를 내고 러시아에 선교사로 간다고 하자 아이들을 데리고 먹을 것도 없는 러시아로 간다고 형님들이 반대를 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삶를 보시고 나중에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 생각 되면 그 때는 거절하지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고 했습니다 선교사로 갈 비용이 없었습니다 저를 핍박 하시던 아버지가 저에게 항공료와 생활비를 주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예비 하심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러시아에 갈 때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오직 믿음으로 나아 갔습니다 레닌그라드에 도착하니 선배 선교사가 마중 나온다 했는데 아무도 없었습니다 비가 오기 시작하여 길에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말이 안 통하는 봉고차 운전수에게 손짓으로 주소를 주며 가자고 했습니다 도착하여 방까지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91년 8월 제1회 여름 수양회에 참석 했습니다 저는 러시아 댄싱에 참석하고 러시아 학생도 1명 초청 하였습니다 그는 세르게이인데 물리 학과1학년으로 키가 196센티나 되었습니다 수양회는 체육관에서 진행 되었는데 미국에서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이 미국에서 70여명을 인솔하고 오셨고 독일에서 25명정도 참석하고 모스크바에서는 대학생104명과 선교사 30여명 성피터스버그에서 20여명이 참석하여 총250여명이 참석한 국제 수양회가 되었습니다 수양회 제목은 예수님이 길이시다 였습니다 저는 고 이사무엘 선교사님을 가까이 보았는데 키는 적지만 거인 다운 산 믿음이 있으시고 우리 교회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이후 성피터스대학 어학부에 등록을 하고 어학 공부를 시작 했습니다 러시아어를 한 시간 배우면 배운 만큼 말을 할 수 있는 실제적 공부였습니다 34세의 늦은 나이에 외국어를 공부 하지만 공부가 지루하거나 하기 싫은 적은 없었습니다 4개월이 지나 동역자와 아이들을 초청하여 12월 추운 겨울에 오게 되었습니다 오자마자 눈이 오고 춥고 먹을 것이 없어서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저는 1년 어학 과정을 마치고 전문인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Ph.D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 생각하여 박사 과정을 시작 했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4년간 저를 대신하여 저의 아내가 자립을 하며 3중의 십자가를 감당 해야 했습니다 제자 양성은 성피터스버그에서 세르게이와 안드레이를 토요일에 저희 집에 와서 1:1 성경 공부하고 합숙을 하고 주일 날 예배를 드리고 학교로 돌아 갔습니다 모스크바에서는 사라 선교사가 올가 자매를 말씀으로 섬겼고 어려울 때는 좁은 집에서 2개월 이상 데리고 살았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믿음의 형제와 결혼시켰습니다 나타샤 자매는 이혼 가정에 문제가 꼬이고 문제가 많았는데 성경 공부하고 회복되어 믿음의 사람과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딸 둘을 낳았습니다 그외 잉잉 스베타 마들린 민홍 자매들을 섬겼고 저는 디모데 알렉세이 마후 스원 사샤 스웨이 등의 양들을 섬겼습니다 저는 일터에서 제자들이 일 자리가 없으면 일자리를 주고 제자로 성장 하도록 도왔습니다 알렉세이 마우 형제는 15년간 저와 함께 일하며 충성스런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저는 혈기가 많고 성급하고 편협 하였는데 고난과 말씀으로 훈련하여 혈기를 빼시며 마음을 넓혀 내면성을 갖도록 인도 하셨습니다 빌 2:3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나보다 다른 사람을 낫게 여기고 말씀을 붙들고 크게 믿음을 체험 한적이 있습니다 한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완전히 내려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매년 4월에 부활절 수양회를 가졌는데 고전 15장 말씀을 암송하며 부활의 믿음을 배우고자 했습니다 부분에서 은혜를 받다가 7-8년전에 후반부 죽는 것이 없어지고 썩는 것이 없어지는 세계를 공부하며 예수님으로 인해 승리를 얻게 되는 것을 통하여 부활의 믿음을 깊이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성탄 말씀은 매년 은혜가 되어 추운 겨울이 추운지 모르고 은혜 가운데 보내게 하였습니다 특히 눅 1,2장이 가장 은혜가 되었습니다 2006년 사라 선교사가 유방암 3기말 선고를 받고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를 하며 고생 하였는데 저도 자신이 죽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이 때 세계적으로 기도 지원을 많이 받고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았고 안암2부에서 많은 지원을 받았습니다 저희는 사랑에 빚진 자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현재 빚진 자의 심정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러시아에 간지 13년 정도 지나자 풍토병인 추위와 꽃가루 알르러지가 시작 되어 콧물이 자주 나와서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은 선교사 자녀들을 위한 MK 국제 학교에서 신앙 교육과 함께 교육을 잘 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들은 미국으로 대학을 가기 원해서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우리 믿음을 계승하여 하나님을 섬기며 대학 교수를 하고 있습니다 딸은 한국으로 대학을 오기 원해서 한국에서 대학을 마치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관악5부에서 목자로 자라 가고 있습니다 저의 아버지는 저희를 지원을 많이 하셨는데 저희의 전도로 88세에 하나님을 믿고 4년 동안 교회에 다니시다가 소천 하셨습니다 가족들도 반절 이상 믿음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 가정은 모스크바에서 세계적으로 오시는 손님들을 초청하여 섬겼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러시아 제자 가정들을 매월 한 가정 씩 식사에 초청하여 교제하고 기도 제목을 나누고 함께 합심기도를 하면 성령이 뜨겁게 역사 했습니다 저는 모스크바에 집을 사지 않다가 2012년에 알고 지내는 고려인과 그의 땅에 집을 짓는 건축에 투자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도 신실하지 않고 크림반도 문제로 제제가 시작 되어 환율이 오르고 가치가 떨어져 아직까지 투자금을 못 받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물질적으로 부요하게 되지는 못 했지만 우리는 성경을 매년 1회독 이상 읽으며 밤마다 감사제목을 찾고 기도제목을 가지고 기도 하게 되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가 시작 되어 모스크바 직항 비행기가 없어 졌습니다 항공권을 판매하는 저의 직장 일도 일이 없어지고 제가 갑상선 수술도 해야 해서 하나님의 뜻으로 영접하고 러시아 선교 30년을 정리하고 본국으로 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2년 동안 서울 안암2부에서 교회와 가정을 위해 기도 하다가 광주 7부의 임아브라함 마리아 목자님들이 초청하여 광주로 오게 되었습니다 임 목자님 가정과 함께 하며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광주 7부 목자님들과 함께 은혜를 누리고 있어서 감사 합니다
저는 일년 내내 매주 화요일 새벽 메시지를 쓰며 은혜가 되었습니다 주일 소감도 묵상 하며 말씀 중심으로 써서 은혜가 되었습니다 3월부터는 팩춰 스터디를 하며 말씀을 가까이 하며 은혜가 되었습니다 금요일 철야 기도는 한 주간 세상에 메인 것들을 내려 놓고 주님과 교제하며 저희 교회와 7-8개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가족들과 믿음의 사람들을 위해 기도 하는 시간입니다 이는 저에게 은혜를 주며 평안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수양회준비 하며 수요일 메시지를 전하며 제가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인생 소감을 도우며 저는 청년들에게 영적 투쟁을 가르쳐 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소원 있는 사람이 적어서 제가 인생 소감을 다시 쓰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세상은 영적 전쟁터입니다 영적 투쟁을 배우지 않고는 영적 파워를 덧입지 못하며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믿음을 지키며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살기 위해서는 우리는 반드시 영적 파워를 배워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사랑을 영접하고 40년간 믿음으로 살며 예수님을 따르고 있는데 이것이 저의 기쁨이요 저의 재산이요 저의 자랑입니다 제가 주님 나라 주님께 갈 때 까지 성령의 인도함 받아서 주님의 일에 힘쓰는 자 되길 소망합니다 죄악 되고 쓸모 없는 자를 구원 하사 죄사함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마디 : 하나님의 독생자를 주신 사랑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의 생명 구언 역사에 저를 써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