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는 이시대의 크리스찬들에게
곰탱이푸우
2026.06.10
조회 76
안녕하세요~ 더블리스침례교회 오영락 목사입니다. 부족한 저의 간증문을 보내드립니다. 받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희 더블리스교회는 영유아보호시설을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현재는 위탁가정과 그룹홈 형태로 전환한 상태이며 아이들과 함께 거주 하면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위기 아동들을 보호하며 만난 살아계신 하나님, 또한 제가 예수님을 믿게된 과정들도 은혜입니다.
부디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교회 이름: 더블리스침례교회
- 성함: 오영락
- 직업: 목사
- 핸드폰 번호: 01058125698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전에 아주 작은 교회인 더 블리스교회 담임목사 오영락입니다. 먼저 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저는 1983년 대전 보문산 자락의 절이 많고 무당이 많았던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많은 크리스찬들이 전도하러 오기를 꺼려했던 동네에서 태어났지요. 그런 제가 예수님을 알게 된건 2001년 8월이었습니다.

저는 유도 선수 생활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유도 선수 생활을 했지요. 고등학교 3학년이 되던 2001년 까지 저 상도 정말 많이 받았어요.
2001년 3월 16일 저는 오토바이 사고가 나게 됩니다. 얼굴의 뼈가 모두 으스러지는 중상을 입게 되었지요. 제가 눈을 뜬건 4일 뒤였습니다. 어머니는 의사를 붙잡고 절규 합니다. 제발 내 아들좀 살려달라고, 제 몸을 보니 온몸이 붕대로 감겨 있습니다. 제게 우울감, 절망감이 찾아 왔습니다. 저는 그렇게 자살 시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수면제를 먹고, 농약을 마시고, 손목을 긋고, 목을 매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저를 쓰시고자 하는 계획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그 모든 시도가 물거품이 되었거든요. 수면제를 먹었을 때는 2일만에 깨어났고, 농약을 마셨을 때는 위천공 수술만 하고 끝났고, 목을 매었을때는 줄이 끊어지고, 나무가 부러졌습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저를 살리셨습니다. 그래도 가만 냅두면 언젠가는 죽을 것 같으니까 아버지가 길을가다 우연히 교회 수련회 현수막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드신 마음이 예수쟁이들 자살안한다더라 자살하면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며 저를 그 수련회로 보내셨습니다. 저는 적응 할 수 없었습니다. 교회에 가본적은 있지만 온마음을 다해 예배에 참여 해보지 않았던 제가 수련회에 적응이 되겠냐구요.


그렇게 저는 밖으로 나와 담배 하나를 물었습니다. 그때 자원봉사자들이 다가와서 제 손을 꼭 잡고 기도합니다. 저는 그분들의 얼굴을 뚜러져라 쳐다봤지요. 같이 기도 해야 한다는걸 몰랐을 때니까.. 눈물을 뚝뚝 흘리시면서 이렇게 기도하십니다. 하나님 당신이 이 형제와 같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줄 믿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이 형제와 같은 사람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줄 믿습니다. 하나님 이 형제를 만나주세요.


그렇게 저는 강당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미안해서.. 날 위해 기도하시는 그분들에게 미안해서..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양원석 목사님이 말씀을 전하고 계셨는데 어떤 사형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 사형수가 어느날 식사를 하고 식당 뒷골목으로 나왔는데 그 옆에 쓰레기가 쌓여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쓰레기가 자신을 향해 말하는 것 같았다며 삿대질을 저있는 쪽으로 하시며 언제까지 뒷골목의 쓰레기처럼 살거야? 라고 하셨습니다.


저에게는 엄청나게 큰 소리로 들렸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크게 이야기 하지 않으셨거든요. 처음엔 삐하는 이명이 나중엔 후두둑후두둑 비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더라구요.그리고 이내 기도회가 시작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해봤어야 하죠.. 한번도 기도 해본적 없던 제가 어떻게 기도 하냐구요. 그 빗소리 가운데 기도 할 수 없으면 주여라고해 이말이 선명하게 들렸습니다. 주여~ 나지막한 한마디에 어떤 것도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눈물, 콧물, 침이 흐르고 눈을 떳을 땐 캠프의 담당 목사님과 간사님들만 눈 앞에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안수기도 해주시고, 영접기도를 하게 되었지요. 저는 그날 그렇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삶은 완전히 바뀌었지요. 공부 해서 대학가겠다고 공부 했더니 어느날 어머니께서 이런 말씀을 하세요. 네가 믿는 그 예수 그분이 누구길래 니가 이렇게 변하냐? 네가 믿는 그 예수 나도 한번 믿어보자 그렇게 어머니께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시작으로 70여명의 친척들이 교회를 다니게 되었지요.


저는 그 받은 사랑 아주 조금도 못갚는 다는 것 잘 알지만 아주 조금이라도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싶은 마음에 인도로 선교를 떠났습니다. 인도 오리사라고 하는 지역에서 크리스찬이라는 이유로 박해를 받은 아이들을 케어하는 사역을 하게 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하게 되었지요. 사실 사랑을 전하러 갔다가 사랑 받고 온것 같지만 말입니다.


제가 인도에서 귀국하기전 무슬림 자매 한명이 이런 고백을 합니다. 야 사이먼 내가 예수님을 믿게 되었어, 근데 인도에 있는 신중 예수님이 몇번째 신이야? 라고 말입니다. 저는 사도행전 4장 12절 말씀을 찾아주며 이야기 합니다. 당연히 첫번째야, 그리고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준적이 없다 그랬어.. 라고 이야기 했더니 이친구가 성부 하나님, 성자예수님, 성령하나님 세분이라며, 왜 한분이야? 삼위 일체 하나님에 대해 모르는 거에요.


그리고 그걸 설명할 방법이 제게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처음으로 나를 위해 신학을 공부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맡겨질 아이들을 위해서 해야 하는 거구나 하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귀국을 하고, 몇달간을 기도했습니다. 울면서 부르짖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저를 목회자로 부르셨다는 확신을 주실 때였는데, 못하겠다 안하겠다 버티는 기도였지요. 그때 제 마음에 이런 감동을 주십니다. "아들아, 능력이 아니다, 내가 돕는 손길들을 붙일거야, 사랑으로 돌본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저는 항복을 하고 신학을 공부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목회자의 길을 가게 되었지요. 저는 아직 헷병아리 목사이지만 지난 2년간 우리 교회는 영유아임시보호시설을 운영하였습니다. 이제는 전문위탁기관으로 다시 출발해야 하는 상황이긴 하지만 아픔을 가진 아이들을 케어 하는 사역을 감당해 왔습니다. 저희가 영유아임보사역을 하게 된 배경은 이렇습니다. 결혼을 늦게 하긴 했지만 뇌하수체선종 수술을 한 결과로 아이를 가질 수 없는 환경에 있었습니다.


난임병원에서 딱 잘라 이야기 하더군요. 당신들은 아기 못가져요. 그냥 포기 하고 입양하세요~ 그때 하나님께서 영유아에 대한 마음을 주실 때였거든요. 사실 원망도 많이 했어요. 하나님 남들은 아이를 낳아 저렇게 버리고 다니는데 왜 우리가정엔 아이한명도 안주시나요? 이렇게 기도 했었거든요. 그때 제게 주신 마음이 네가 저 아이들 돌봐라 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를 바꿨어요. 하나님 제게 영유아들을 돌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를 키워본적 없어요. 하나님 제게 아이 한명만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그 아이로 연습하고 하나님이 맡기실 아이들을 사랑으로 양육 하겠습니다.


의학적인 확률로 1.53% 아주 절망적인 수치를 뚫고 하나님의 역사로 받은 아이가 저희 아들 동하입니다. 절망적인 수치를 받아들고 하나님 앞에 기도 했습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하나님이 일하시면 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아기 한명만 주십시오.
그렇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려 우리는 영유아를 케어하기 시작 했습니다. 총 4명의 아이가 우리 시설을 거쳐갔지요. 1명은 입양되어 잘 크고 있고, 3명은 보육원으로 떠났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부디 증거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좋겠습니다.
https://youtu.be/zgLhUCuTQFQ?si=hucRNE3ATMFoEzoJ 유튜브 링크는 침례교 국내선교회 CPR 예배를 드리며 여의도 침례교회에서 간증했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