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묘의 140세대 청년주택 건물주가, 자신의 건물을 수직마을로 바꾸다.
지혜와계시
2026.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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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소개]

저는 동묘의 140세대 청년주택의 건물주입니다. 임대인과 세입자라는 차갑고 사무적인 관계 대신, 저는 이곳에 사는 청년들을 제 자녀처럼 여기며 교제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대우건설 7년 근무, 네패스ENC 사장, 스타리치 부사장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저는 치열한 부동산 현장에서 작은 성공을 거둔 사업가였습니다. 그렇게 건물주가 되었지만, 정작 제가 얻은 가장 큰 자산은 '돈'이 아니라 '삶의 지혜'였습니다.

이곳에 사는 청년들은 본가가 지방에 있거나 혼자 떨어져 사는 1인가구가 많습니다. 30세 전후 사회초년생으로 취업, 이직, 먹고사는 문제부터 주식과 부동산 투자까지 저마다의 고민을 안고 살아갑니다. 저는 엘리베이터에 공지 하나를 붙였습니다. 제 이력과 함께, 인생과 진로에 막막함을 느끼는 청년들에게 무료로 코칭을 해드린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다른 내용보다 '부동산 재테크 상담'이라는 한 줄이 가장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사람에 치일 만큼 북적이면서도 외로움을 느끼게 되는 곳이 도시인 것 같습니다. 저는 수직으로 세워진 마을처럼, 청년들이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함께 성장하는 '수직마을'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13층 라운지를 직접 페인트칠하고 소파, 큰 TV, 마샬 스피커를 들였습니다. 슬리퍼 신고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진짜 동네 친구들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한 일을 적으면 선정해서 스타벅스 쿠폰과 케이크를 준다는 위시트리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정말 많은 청년들이 참여했고, 저는 직접 투썸플레이스에 가서 케이크를 사와 한 집 한 집 벨을 누르며 선물을 전했습니다. 놀랍게도 청년들은 저를 자신의 집 안으로 초대해 대화와 교제를 나눠주었습니다. 이때 만난 청년들 다수가 이후 퓨처나우 코칭 커뮤니티로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만난 청년들에게 밥을 사주고 13층 라운지에서 고민을 들어주기 시작했습니다. 돈을 모으고 투자하는 문제로 시작된 대화는 어느새 연애와 관계, 이직과 직장생활까지 진솔한 고민으로 이어졌고, 저는 진심으로 경청하며 함께 고민했습니다. 작가를 꿈꾸는 청년, 건물 1층 떡볶이집 사장님, 국어학원 강사, 여행사 직원, 음악치료사까지 정말 다양한 청년들이 멤버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동네 친구가 되어주었고, 서로의 방에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반찬을 나누는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그러는 중에 예수님을 궁금해하고 영접기도를 하는 청년이 생기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성경을 선물하고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런 만남과 변화의 이야기들은 유튜브 '동묘아저씨'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더 많은 청년들과 나누고 있고, 매주 한 챕터씩 함께 북클럽을 하며 청년들과 함께 집필한 책 『퓨처나우』를 출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한국청년주택 회장으로서, 삭막한 도시 속에서 외로움과 막막함을 안고 살아가는 더 많은 청년들에게 이 따뜻한 수직마을을 어떻게 더 넓혀갈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간증]

사고가 나기 전 저는 누구보다 바쁘게, 성공을 향해 달리던 사업가였습니다. 2016년 5월 28일 토요일, 저는 지금도 그날의 일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그날 아침, 저는 아내와 딸을 차 뒷좌석에 태우고 오랜만의 가족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경주로 향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2차선에서 주행하고 있었는데, 앞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였습니다. 간신히 멈춰 섰다고 생각한 바로 그 순간, 3차선을 달리던 승용차가 급하게 핸들을 틀며 제 차를 들이받았습니다. 충격과 함께 차는 1차선으로 날아갔고, 1차선을 달리던 버스가 운전석 문을 강하게 들이받았습니다. 차는 다시 3차선 쪽으로 튕겨 나갔고 뒤따르던 또 다른 차량과 충돌했습니다. 모든 일은 정말 순식간에 벌어졌습니다.

정신을 차려보니 아내는 얼굴에 피를 흘리며 기절해 있었고, 딸 역시 머리에 피가 난 채 떨고 있었습니다. 차는 완전히 파손되어 결국 폐차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끔찍한 사고였습니다. 그 사고로 저는 다리를 크게 다쳐 한 달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아내는 몇 년 동안 치과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이 정도 부상으로 끝난 것이 기적입니다."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동안 저는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죽음 앞에 서 보니 삶이 전혀 다르게 보였습니다. 죽음이란 결국 제가 추구해 온 모든 것들이 멈추는 지점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순간은 언젠가 누구에게나 반드시 찾아옵니다. 물론 저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약 그날이 제 인생의 마지막 날이었다면 어땠을까.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마무리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저는 한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자 무엇이 중요한지, 그리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진심으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이 마음 깊이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저를 개인적으로 아신다는 것, 그리고 저를 사랑하시는 아버지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마음에는 이전과는 다른 깊은 평안이 찾아왔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에게는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 아니라 영원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그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자 관계도, 일도, 재정도 모두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그 답을 찾고 나니, 이상하게도 제 시선은 자꾸만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는 다른 청년들에게로 향했습니다. 지금 동묘 청계 로벤하임에 사는 청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제 건물 엘리베이터에 공지를 붙였고, 13층 라운지를 고치고, 청년들에게 밥을 사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만난 청년들 중 영접기도를 하고 예수님을 궁금해하는 청년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성경을 선물하고 함께 기도합니다. 그리고 매주 한 챕터씩 함께 모여 읽고 써 내려간 이야기는 결국 책 『퓨처나우』가 되었습니다. 제가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찾은 그 평안을, 청년들은 더 일찍 찾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