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저는 경기도에서 목회를 돕고 있는 사모 입니다.
예전에도 글을 올렸지만 두서없이 올린것 같아서 다시 정리하여 올리려고 합니다. 제 간증문을 읽으시고 꼭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곳 게시판에도 은혜스러운 간증이 무지 많은데 여기에 출연하는 조건은 연예인, 외국목회하시는 분, 이름있는 교회 목사님이나 강사,
유투버들이 우선이 되는것 같아서 마음이 씁슬합니다.
부디 저처럼 사역을 갈급하는 자들이 손을 잡아주셔서 기회를 열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번아웃과 우울감이 치료되는데 큰 도움이 될것 입니다.
저는 사모가 되기로 서원기도를 했습니다
여섯~일곱살 무렵, 시골에서 교회를 다닐때 교회에서 부흥회를 했습니다.
강사목사님은 나중에 커서 되고싶은것에대해 서원기도 제목을 써내라고 하셨고 한글을 모르던 저는 엄마의 도움을 받아 종이에 서원기도 제목을 적었습니다.
저는 두가지를 적었습니다. '사모님' 그리고 '선생님' . 저희 엄마는 저희를 무척이나 엄하게 키우셨습니다. 저의 서원을 적으시는 엄마는 사모의 길이 어떤길인지 아시기에...저를 약간 째려보면서 하나만 적으라고 손짓하셨습니다.
엄하신 엄마에게 거의 말대꾸를 하거나 반항을 하지 않던 저는 한가지만 쓰라는 엄마의 말을 처음으로 듣지 않고 고집을 부렸습니다,
아니다. 나는 두가지를 다 할꺼다. 사모님, 그리고 선생님. 엄마는 약간의 한숨을 쉬며 종이에 사모님, 선생님을 받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는 기도제목적힌 종이를 강사목사님께서 받으시고는 몇개를 뽑으셨는데 제가 적은 종이를 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무거운 돌 들어봤어?" "너가 뒤로매는 책가방 있지? 그 책가방에 무거운 돌덩이 들이 엄청많이 들어가있어 그 가방을 평~생 매고 가야할수도 있어.
사모가 되면 그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매고 다녀야 되는데 너, 그 가방 매고 다닐수 있어? "
어릴적 제가 사모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딱 한가지 였습니다.
교회에서 성도님들이 사모님을 부를때~ "사모님~ 사모님~" 이라고 부르는데 이소리가 저에게는 엄청 높은 사람에게 부르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그래서 사모님이 되게 높은 사람인줄 알았고, 또 그 어린마음에 부러웠습니다. 그래서 사모가 되고 싶었고 서원까지 했습니다.
저희 엄마는 맛있는 것이 생기면 늘 교회 목사님, 사모님을 먼저 갖다드렸기 때문에 사모님이 되면 막 성도님들이 먹을것도 주는구나~ 아 높은 사람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던것 같습니다.
평범했던 유년시절동안 저는 언니, 오빠와 학교 끝나면 매일 교회에 가서 목사님 자녀들과 놀면서 교회가서 찬양도 부르고 사택에가서 맛있는것도 먹으며
거의교회에서 살다시피 하며 지냈었는데.. 부모님의 불화로 저희가정은 깨져버렸고,부모님은 이혼하셨습니다 저는 언니, 오빠, 아빠와 대전
할머니댁으로 강제 이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이사가서의 삶은 정말... 상상 그 이상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저희를 방치하였고, 언니는 우리를 키우려 산업체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낮과 밤에 번갈아가며 학교와 직장을 다니게 되었고 오빠와 저는
작은아버지집, 할머니집을 오가며 학교생활을 했습니다.작은아버지 집에서는 사촌오빠의 성추행, 할머니댁에서는 집안일과 구박을 당하며 서러움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교회를 가고 싶었지만 할머니는 절실한 불교신자였기에 교회를 다닐 수 없었고 보호자인 아빠마져 교회를 떠났기에 교회를 다시 나갈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늘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ooo 목사님(유년시절 다녔던 모교회 목사님) 저좀, 찾으러 오시면 안돼요?"
엄마를 보고싶은것 보다 교회가 가고싶었습니다. 어린시절 엄한 엄마께 무섭게 신앙지도를 받아서 인지 교회에 안가는 것은 늘 '죄'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교회에 가고 싶을때 마다 생각나는 찬양을 불렀는데 '실로암' 이었던것 같습니다.
중학교 시절까지 저에게는 고통에 시간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사모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시간표 였던것 같습니다.
급식비를 내지 못해서 점심시간이 되면 학교 계단에 나와서 100원짜리 젤리 한봉지로 끼니를 때우거나 다른 친구들 먹는걸 구경할때도 많았습니다.
중학교를 다니며 이단(하나님의 교회)에도 다녔던것 같습니다. 정신을 차리게 된건 중학교때 과학선생님 이었던 대전산성교회 장로님을 만나게 하셨고 그분을 통해 빠져나올수 있었습니다. 저를 바른길로 인도하기 위해 장로님을 보내주신거였습니다.
고등학교 진학무렵, 연락이 끊겼던 엄마와 연락이 되어 저는 엄마가 계신 강원도 홍천으로 가게 되었고, 엄마는 재혼을 하신 상태였습니다.
새아버지께는 아들,딸이 있었고, 딸은 저와 동갑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저는 아버지 딸과 그냥 친한 사이가 되었고, 아버지에게는 보자마자 "아빠" 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엄마를 만나 행복했습니다. 새아버지는 친딸이 있었음에도 저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중학교시절 천식이 생겼는데. 천식이 한참 심할때 엄마를 만나게 되었고, 밤이고, 낮이고 천식 발작이 오면 군부대로, 한시간 걸리는 병원으로 저를 업고
나르셨습니다. 이복언니와 고등학교 첫등교를 시키신 아버지를 교무실에 직접 찾아가셔서 교감선생님께 직접인사를 드리셨고 담임선생님께는 제가 몸이 약하니 잘 부탁드린다는 당부를 하셨습니다.저에게는 "아프면 선생님께 말씀드려 아빠가 데리러 올께"하고 따뜻한 사랑을 주셨습니다. 친아버지에게 듣지못했던 말들을 새아버지를 통해 듣게 하셨고, 새아버지는 저를 살리겠다고 산으로 들로 다니시며 몸에 좋은 산삼, 뿌리 약초를 캐다가 제일 좋은 것을 늘 먼저 먹여주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같이 살았던 제 이복언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정도 입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전에 살고 있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 언니집으로 와서 1년동안 알바를 하며 돈을 모은다음 대학에 진학하게 되었고,
미션스쿨이었던 대학에서 찬양팀에 들어가서 채플시간마다 찬양인도를 하며 즐겁게 사역하며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지금 유명해지신 손경민 목사님과 같이 학교를 다녔고 찬양팀 활동도 같이 했습니다.
학교선배의 네트워크 연락망인 싸이월드를 통해 어느 한 전도사님을 알게 되었고 "아빠같은 남편감" 을 꿈꾸던 저에게 하나님의 응답이라고 생각이 되었고,
제가 먼저 대시를 하여 교재를 하게 되며 결혼가지 골인을 하였습니다.
나이차이가 있었지만 아빠같은 남편감이 우선이었기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였지만...깨닳은 것이 있습니다.
"아 기도는 구체적으로 해야하는구나..." 아빠같은 남편을 만나게 해달라고 했지만 더 구체적으로 기도하지는 않았던것 같습니다.
제 기준으로는 잔소리가 많았습니다. "잔소리가 많은 아빠였구나.." 말은 너무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잘하는 아빠였구나.."
저는 감성적인 사람인데 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 이성적인 아빠구나.." 그래도 가정과 사역에 열심히하는 모습에 듬직함이 보였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임이 확실했습니다.
남편은 수련목회자3년차였고 저는 결혼해서 남편이 사역했던 교회로 출석하게 되며 속회와 찬양대에 들어가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당시에는 목사안수를 받으려면 1년의 담임목회를 해야 한다고 해서 경기도 김포에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저희는 양쪽 부모님 다 목회자도 아니고, 장로님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처럼 돈이 많은 부자도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도움 받을곳이 하나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시어머님께서 천만원을 빌려주셨고 정말 맨땅에 해딩하는 것과 같이 교회를 개척하여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저는......금~방 부흥될줄 알았습니다.
상가2층 장의자 3개 4개 정도 들어가는 공간이 교회였고 돌지난 첫째 막 태어난 신생아 둘째와 한평남짓 교회옆 작은 방에서 네식구가 살아야 했습니다.
목사님 서재는 꿈도 못꾸고 작은 밥상에서 밥먹고, 치우고 설교준비하고, 화장실도 방안에 없어서 상가 1층을 사용해야 했으며 아이들 씻기는 공간도 마땅치 않아서 싱크대를 욕조삼아 씻겨야 했습니다.
창문이 없어서 환기를 시킬수 없어서 연년생 아이들은 감기를 달고 살아야 했습니다.
저는... 이모든 환경과 상황이 몸으로 다가와서 산후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남편에게 말했지만 현실적인 남편은 당연한 대답인 "기도해야지" 라고 대답을 했고, 밤마다 저는 울면서 잠이 들어야 했습니다.
교회가 상가 2층이었는데 어느날은 제가 2층 창문을 열고 백일도 안된 둘째를 들고 엉엉 울며 서있었습니다.
창문까지 왜 열었을까? 왜 이렇고 있지? 설마 내가 이상한 생각..? 하려던 찰나에 교회에 십자가가 제 얼굴을 비췄고,
저는 그대로 엎드려 펑펑울며 회개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이 산후우울증이 온 저를 살렸지만 마음 한구석은 여전히 시리고 아팠으며 그 모든 원망이 남편에게도 향했습니다.
공감안해주는 남편이 그냥 미웠고 싫었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고 울기도 많이 울었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남편은 저를 참 많이 돕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어려워서 재정을 도우려 저는 일을 하게 되었고 제가 직장에 있는 동안 남편은 홀로
교회를 지키고 아이들의 양육을 전심으로 도왔습니다. 아이들 목욕, 식시 이유식. 걸음마를 막땐 아이들 산책은 물론, 제가 힘들지 않게 뒤에서 외조를 해주고 있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 거의 저희 가족만 예배드리는 날이 많았음에도 저희 남편은 설교준비를 소홀이 한적이 단한번도 없었습니다.
서재도 없는 그 작은방, 작은 밥상에서 아이들이 자는시간에 시간이 쪼개어 설교를 작성하고 설교를 연습하고 매일매일 성실하게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여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저와 다투면 "내가 미안해. " 라고 사과하지는 않지만 꼭 저를 맛있는 것을 사주려 식당에 데려가곤 했습니다.
어느날 약간의 다툼이 있었고 그다음날 저를 데리고 식당에 가게 되었습니다.
남편이 음식을 가지러가는 뒷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제 눈에서 눈물이 뚝 하고 떨어지면서 울컥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너는 남편목회를 돕는 사람이지, 남편을 조정하는 사람이 아니야. 애처롭지 않니?" 이마음을 주시는데
갑자기 몸이 뜨거워지기 시작하면서 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어찌저찌 식사를 마치고..........그날부터 남편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남편을 조종하려고 했습니다.
"목사님이니까 이렇게 해야하는거 아니야? 목사님이 왜이래? 목사님이 왜 저런말을해? 목사님이니까 참야야 하는거 아니야? 맘에 안들어.."
이생각으로 남편을 바라보니 다툼이 없을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람이고 누구보다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족도, 우리 아내도 그런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권면했던 것들이 저는 잔소리로 받아드리고, 지적으로 받아들였기에 쌓이고 쌓여 분노가 되고 화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참 부끄러웠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남편이 어떤길을 가든 저는 남편을 응원하고 돕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 생각을 바로 잡아주세요"
그렇게 기도하던중 남편과 함께 대학원공부했던 목사님께서 은퇴를 하시게 되었고 지하교회에서 목회를 하셨는데 성도 한명없던 저희는
성도 세명있는 교회로 간다는것 자체가 너무 좋아서 무조건 가자!고 해서 지금있는 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성도는 세분 계셨습니다.
한분은 가끔 술드시고 예배 나오시고, 얼마후에 천국가셨고, 한분은,,,청소하시던 분인데 예배시간 마다 꾸벅꾸벅 졸기 일수였습니다.
어릴적 무섭게 신앙생활을 배웠던 저였기에. 예배가 무엇보다 소중한걸 알았던 저였기에, 이럴 분위기 속에서 예배드리는게 쉽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지하였고, 사택은 없었습니다.
교회옆 작은 공간에서 또 네식구가 살게 되었습니다. 화장실을 있었지만 대변을 볼수가 없어서 대변을 보려면 상가 1층 화장실로 여름' 추운겨울에도 여덞살 일곱살 자녀들은 상가 화장실에서 해결해야 했습니다.
1년여 가까이 지하 에서 생활하던 중 동네에 LH 아파트를 공사하였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 집에갈때 밑으로 안내려가고 위로 가면 안돼요?" 하나님은 ... 그 아파트로 거처를 옮겨주셨습니다.
방 한칸, 거실, 주방 뿐인 아파트지만 저희가족은 행복했습니다.
이사를 하고 원로목사님을 모시고 첫 예배를 드리는데 이사와서 가장좋은 점이 뭐냐고 목사님께서 우리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추울때 1층으로 똥싸러 안가서 좋아요" 너무나 눈물이 났고 감사했습니다.
감사한 시간들을 간직하며 이렇게 저렇게 시간이 흐르고 주일학교도 생기고 성도들도 이따금씩 나와서 행복하게 목회를 했지만
또 마음 한구석이 공허? 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왜그런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또 이상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성도들이 그날따라 졸거나 예배를 집중못하고 핸드폰을 하거나, 다리운동을 하거나, 심지어 우리 자녀들 조차 예배를 집중하지 못하고
예배태도가 엉망인것이 보였습니다. 마음이 아파서 눈물이 났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아프니 또 악한영이 제 약한곳을 건드리며 다른사람을 보며 부러워하는 눈을 주기시작했습니다.
성도가 많는 자립교회 목사님, 사모님들이 너무 부럽고, 삐까번쩍한 새 스타렉스 타고 다니는 목사님들이 부럽고, 나는 직장에서 힘들게 일할때
일한하는 사모님들이 부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제가 예~전 부터 아는 목사님이 있는데 그분 아버지도 목사님 입니다.
근데 그 목사님은 욕을 입에 달고 사셨습니다. 목회하시면서 술도 드셨고, 아무튼 욕을 그렇게 많이 하셨습니다.
평이 그렇게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교회로 부임을 해서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알고보지 아버지 목사님께서 은퇴하시면서 그교회로 다른분이 오시고
아들목사님을 오신 목사님 교회로 돌려서 부임하신거였습니다.
물론 그속에는 하나님 뜻도 있겠지만 저로써는 "와 아버지가 목사님이니까 욕쟁이 목사여도 큰교회가네?" 이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날 교회에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막 눈물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성실하게 목회하는 남편이 불쌍한 생각이 들면서
화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막 울었다가 소리를 질렀다가 하나님께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장인어른이 목사님이면 그 빽으로 큰교회, 자립교회 잘가고 또 돈있으면 돈주고 가는 그런 법이 어디있어요?
그럼 우리는 아버지도 목사님 아니고 우리는 돈도 없어요 그럼 우리는 못가요? 그런법이 어딨어요?? 돈없으면 자립교회 못가요?? 그런게 어딨냐구요!"
소리치며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저 힘들어요!! 저 힘들다고요 저도 자립교회 가고 싶어요. 저 찬양사역도 하고 싶어요 하나님이 좋은 목소리 주셨자나요 근데 왜 사용안해 주시냐고요. 왜요왜요!! 왜 여기 보내셨는대요!! 왜요 왜요!!! 하는 도중, 어릴적 서원기도제목 적고 강사목사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이 났습니다
"너 무거운 돌 들어봤어?" "너가 뒤로매는 책가방 있지? 그 책가방에 무거운 돌덩이 들이 엄청많이 들어가있어 그 가방을 평~생 매고 가야할수도 있어.
사모가 되면 그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매고 다녀야 되는데 너, 그 가방 매고 다닐수 있어? "
"너가..대답했자나..무거운 십자가..매고 간다고....." 이마음은 주셨지만 저는 계속 울부짖었습니다. 그래도요!! 그래도요~~ 왜여기로 부르셨냐고요!!
하며 울다가 지쳐서 잠깐 잠이 들었는데 살짝 꿈에서 연세중앙교회 윤석전 목사님이 꿈에 나타나셔서 저에게 돈봉투를 주시면서 "백만원이야 이건 너 남편이 너무 착해서 성실해서 주는거야" 하셔서 너무 기뻐하는중 잠에서 깨어났고 잠에서 깰무렵. 눈앞이 번쩍이며 동그란 형광빛으로 이렇게 글씨가 나타납니다.
착.하.고.충.성.된.종.아.참.잘.하.였.다 이 글씨는 너무나 선명했습니다.
"아, 이곳에 보내신 이유는 남편목사님이 참 성실하게 하나님보시기에 착한 사람이기에 보내셨구나. 이곳을 감당케 하실만한 사람이 필요하기에 남편목사님을 보내셨구나" 깨닳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 그건 알겠구요 저는요~ 저는 안착한대요~ 저힘들다니까요~" 끝까지 투정을 부리며 마무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왔고
그다음주가 되어 주일이 되었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후 식사를 하고 한 집사님의 발언이 저를 탁 건드렸고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내색할수 없기에 "주여~" 하고 속으로 삯히고 오후예배를 시작하려고 반주를 시작하는데 찬양이 "저 멀리뵈는 나의 시온성" 이라는 찬양이었습니다.
2절가사에 "아득한 나의 갈길 다가고 저 동산에서 편히쉴때 내고생하는 모든 일들을 주께서 아시리 " 이가사가 저를 확 일으켜 세웠습니다.
아, 주님이 아시는 구나,,, 내 마음을 , 내고생하는 것을, 내 힘듦을, 다 아시는 구나 그럼 됐다. 하면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고
그이후로 제 애창곡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다짐한것이 있습니다. 개척교회 하면서 미자립 교회 하면서 사례비한번 제대로 받지 못한 안쓰러운 우리 남편 목사님,
"내가 조금 수고 해서 목사님 사례비 드려야지" 하는 마음으로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저는 교회를 위해, 가정을 위해 '재정 선교사' 가 되어보려고 합니다.
작은교회를 섬기다보니 쉽지않은 여정이지만 하나님은 역사하셨고 역사하시고 역사하실것을 확신합니다.
코로나의 여파로 교회나오던 어린아이들이 떠났지만 그 아이들도 우리가 품고 기도하면 다시 교회 나올 것이고
방황중인 교인들로 반드시 언젠가는 교회에 나올거라 확신합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의 사모로 거의 20년 가까이 있다보니 알게 모르게 문득문득 찾아오는 외로움, 공허함이 있습니다.
저는 찬양부른것을 좋아합니다.
고등학교학생부터 찬양인도를 하였고 대학교채플에서도 찬양인도를 하였습니다.
유명해 지신 손경민, 목사님 부부와 함께 학교를 다녔고
은혜작곡가 손경민 목사님이 드럼을 치셨고 김정희 사모님이 건반을 치시면 저는 찬양인도를 하였습니다.
그 두 부부는 하나님께 쓰임받아 열심히 사역하고 계시고 세상사람들이 보기에 성공한 자리에 올라있으니 기쁘면서도 한편으로 부러운 마음과 나무 찬양사역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건 사실입니다.
작은교회를 섬기다보니 찬양을 부르고 사역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언젠가 쓰임받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홀로 신디를 치며 찬양연습을 거의 매일 하고 있습니다. 차로 이동할때도 거의 찬양을 부릅니다.
그렇게 하면서도 "이 언제 찬양사역할수 있지?" 하는 마음이 들때가 있고, 큰교회 찬양팀에서 부르는 찬양을 시청하며 찬양을 따라 부를때도 내가 저 자리에 서있는 것을 상상하며 부르기도 합니다.
이제 만40이 되었지만 저도 간증할것이 이렇게 많은데, 방송이나 유튜브에서 많이 알려진 사람만 우선으로 이런 프로그램에 나와서 출연하고 간증을 하다보니 저처럼 이름없는 사모나 작은교회 사모들은 이런자리에 설 기회가 없어요. 그러다 보니 계속 위축되고, 지치고, 공허함도 찾아옵니다.
한줄기 빛 이라 생각하고 새롭게 하소서에 문을 두드립니다.
한번만 출연시켜주신다면 기도로 열심히 준비하고 이 기회를 통하여 더 힘내어 남편목회를 열심히 돕겠습니다.
큰교회 사모님들, 유명한 사모님들만 섭외하지 말아주세요. 작은교회 사모님들에게 힘을 실어줄수 있도록 저를 꼭 뽑아주세요.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작가님. 피디님........ 저 일어나고 싶어요. 힘을내고 싶어요.
작은교회 목회자들은 교인이 몇명있는지, 목회를 어떻게 하는지 목회 방법을 알려주는것 보다. 그저, 이런 기회를 통해 사역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
"힘내세요, 잘될겁니다!" 이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저를 꼭 발견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꼭연락주세요.....부탁드려요

사역을 간절히 기다리는 작은교회 사모입니다. 저를 꼭 발견해주세요.
행복한하하하
2026.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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