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살때 "우리동네"
풍경#1
오후 2시만 되면 우리동네 아줌마들은 양동이를 한둘씩 들고
공동수돗가로 모여듭니다.
70년대 열악한것이 어디 수도시설 하나뿐이었겠냐만은
그때는 집집마다 수도시설이 안되어 있어 그렇게 물을 받아서
썼었나 봅니다.
그것도 24시간 콸콸나오는것도 아닌 제한급수였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모인 아줌마들은 누구네가 어떻게 되었더라, 내가 뭘
했네하는 등등의 수다를 쏟아내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지
않았나 싶습니다.
간혹 엄마는 나가 놀아야하는 내게 엄마대신 가서 줄을 좀
서있으라고 시키셨는데... 그일이 어찌나 하기 싫던지...
겨울이 오면 수도가 얼까봐 안입는 옷등으로 월동준비를 하기도
했지요..
물받는 일이 점점 힘들어지자 반상회에서 말이 나왔나봅니다.
집집마다 기다란 호스를 하나씩 장만하여 돌아가며 물을
받는겁니다.
일일이 길어 옮기는 것보다 얼마나 편해졌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물받은다음 호스를 둥글게 개는 일은 저에겐
고역이었지요... 그 임무가 저에게 떨어졌었거던요..
풍경#2
일요일입니다.
온동네 아줌마,아저씨,언니,오빠,동생들 모두 같이 등산을
가기로 했습니다.
우리동네 주민들은 우애가 참 깊었나 봅니다.
어떻게 다같이 모여 등산갈 생각을 다했을까요?
아무튼 우리동네 뒷산에는 등산로가 있습니다.
그 뒷산 한봉우리에는 장군바위가 있었는데..
그 장군바위가 이순신장군께서 벗어놓은 신발이 바위가 되었대나
뭐래나... 믿거나 말거나한 전설이지요...
근데 멀리서 보면 정말 이순신 장군이나 신었음직한 커다란
신발모양의 바위가 떡하니 놓여있지요..
등산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헬기장이 있고, 약수터도 있고,
작은 규모의 체육시설도 있었죠..
멀리 "야호"하며 외쳐도 보고(어린마음에 다시 되돌아 오는
메아리가 신기하여 몇번이나 했던 기억이 나네요), 다같이
열맞춰 서서 국민체조도 하고, 수걸돌리기도 해었던것
같네요..
그외에도 각자 먹을 밥한공기와 반찬 한두가지를 쟁반에
담아 다같이 모여서 점심을 먹었던것..
지금은 눈을 씻고 찾아볼래도 드문, 굴러다니는 돌하나도
귀한때이지만 그때는 굴러다니는 돌이 어찌나 많던지
그 돌을 모아 살구받기(공기놀이)를 했던것..
편을 갈라 고무줄뛰기 한것.. (고무줄뛰기의 백미는 역시
남자아이가 고무줄을 끊고 도망가면 여자아이들은 일제히
그아이를 쫓아 잡으러 다닌것이 아닐까요)
여름밤이면 공터의 평상에 모여 앉아 귀신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졸였던일들...
"우리동네"하니까 그 여섯살때의 어렴풋한 추억들이 제일
먼저 떠오르네요..


댓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