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고등학교나 대학시절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들 하지만 나는 돌아갈 수만 있다면 시골에서 보낸 코흘리개 국민학교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봄이면, 또래끼리 옹기종기 담벼락 아래 모여 앉아 크고 작은 비밀을 만들어 가며 아지랑이 온기를 느꼈고, 진달래랑, 새하이얀 싸리꽃, 노오란 산수유꽃, 이들 사이로 어우러지는 산벚꽃등, 피어나는 이름 모를 수많은 형형색색의 꽃 향기에 취해 나비되어 뒷동산을 누비고 다녔던 그때!
같은 방향의 계집아이들끼리 아스팔트 긴 길을 걷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지쳐버리면, 뽕나무 열매로 입술을 검붉게 칠하고 깔깔댔으며, 먹고난 빈 도시락 가득 까만 오디 열매로 채워가던 하교길이 그리워 진다.
마을을 휘감아 도는 개울의 돌아 앉은 웅덩이를 찾아, 온몸에 소름이 돋도록 물장구 치던 그 여름! 익어가는 살구, 참외, 자두, 수박을 서리하려고 땅거미가 깊어갈 때까지 마을 공동마당에 모여 순발력과 힘,지혜를 동원해야 하는 여러 놀이를 즐겼으며, 장마가 질 때면 다리가 끊어져 먼 거리를 돌아 검은 고무신을 손에 꼭 쥐고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업혀 폭넓은 개울을 건너 학교가던 기억이 선명하다.
한 낮의 열기로 달구어진 올망졸망한 돌멩이를 배가 뜨겁도록 치마가득 주워 담아 아름드리 느티나무의 드리워진 그늘 아래서 공기놀이도 하고, 고사리손 한껏 늘려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는 주인 없는 땅따먹기 놀이를 하다 오후의 나른함을 이겨내지 못할 때면,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들마루 위에서, 맴맴맴맴 매앰....... 쌔롱쌔롱쌔롱쌔롱 쌔애~~ 매미들의 노래를 자장가 삼아 늘어지게 낮잠을 자도 맘편했고, 몇번씩이나 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공기놀이, 땅따먹기 놀이에 해 지는 줄 모르고 열중하다 혜숙아,밥 먹자~ 엄마의 힘있는 목소리에 흙 때낀 손톱을 씻지도 않고 달려가던 그때가 어른거린다.
가을이면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쏘다니며 단풍잎 주워 책갈피에 끼우고, 노랗게 익은 벼들을 바라보며 논두렁에 둘러앉아 새참을 먹고 메뚜기 잡던 일! 벼 베고 난 논, 쌓아놓은 볏가리를 방패삼아 숨박꼭질하던 달 밝은 밤의 기억들! 피어오르는 새벽 이슬 머금은 땅 냄새를 맡으며 실눈 비비고 알밤을 줍던 일. 향기 진한 들국화를 한아름 꺽어다가 작은방 창가에 꽃아 두고 손님맞이 준비하던 그때! 십여개 마을의 공동 잔치가 되곤 했던 가을 운동회! 플라타너스 큰잎을 쓸어 모아 낙엽 태우던 냄새가 배어 있는 산골의 작은 교정은 세월의 장구한 흐름 앞에서도 아직 그대로이겠지?
따뜻한 보금자리를 위해 솔방울과 고주박 줍느라 온 산에 찹새 떼처럼 몰려 나가곤 했던 겨울들! 뻘겋게 달아오른 난로 위에 여러 층 높이로 쌓여가는 도시락에 신경 쓰느라 원주율 구하는 식을 놓쳐 버리던 4교시. 눌어붙은 도시락 긁는 소리로 요란했던 점심시간.
1년 동안 제 구실을 다하고도 개구쟁이들에게 또다른 즐거움을 제공하기 위해 마련된 다랑이 큰논에 모여 발보다 한배 반이나 더큰 큰오빠 스케이트에 신문 뭉치를 구겨넣고 엉덩이가 깨지는 아픔을 감수하며 얼음을 지쳤고, 코끝과 손발이 얼어붙으면 논두렁을 태워 추위를 달래보던 그때! 문풍지를 바르고 남은 문종이와 찢어진 파랑 비닐우산 대나무를 잘 다듬어 꼬리긴 연을 만들고 깡통에 구멍을 뚫어 나무막대를 꽃아 근사한 연패를 만들어 언덕에 오르던 시절. 두툼하게 쌓인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들면 눈길 쓰는 일을 대신 한 것이었고, 현재의 키와 몸무게에 공헌한 긴긴 겨울밤의 영원한 야참인 곶감과 군고구마, 입이 얼 정도로 차가웠던 항아리 속의 고염과 홍시...... 아직도 어머니는 도심속에서 맛보지 못하는 겨울 야식을 준비해 놓고 장성한 자식들을 기다리시겠지!
세상에 두려울게 없었고 즐겁게 마냥 뛰어 놀기만 했던 그 시절로 다시 돌아 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기다릴 때 좀처럼 오지 않는 버스 처럼 이제는 오지않는 시간이 되었고, 가을이 몰고온 심연의 시간 앞에서 그리움만가득할 뿐이다.
어스름한 저녁 노을 받아 금빛 물결 품어내는 강 언덕에 선 내 앞엔 지금도 변함없이 정겹기만한 고향의 갈색 풍경이 펼쳐지고 그것이 얼마나 고귀한 선물인지 아직 알지 못하는 미소년.소녀들의 재잘거리는 음성이 들려온다.(1997.진한갈색향기속에서)
이용복-그 얼굴에 햇살..을 신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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