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때면 그리운 아버지생각에....
안영남
2004.02.15
조회 96

1919년 기미년생이신 우리아버지
내가 나이를먹을수록 그리움이 짙어지는 아버지
그리움의 긑은 어딘지 어디까지인지요
세상을 떠나신지 강산이두번 바뀌었지만 내가지우지 못할
그리운아버지와의 추억을 만들던 어린그시절 우리집은 딸만 일곱이었답니다
그중 다섯째로태어나 남자이름을 지으면 남동생을 본다고 누가
그랬던가 남자이름으로 지어진채 여동생둘을 두고말았지요
이름때문에 지금도 내이름만 나오면 가슴이철렁 밑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옵니다
내가살던집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따뜻하던 남향집에 넓은
대청과 긴마루가 늘반들반들 했답니다

앞마당에는 팔뚝만한 가지며 오이가 주렁주렁달려있었고 아래채
지붕위에는 박넝쿨이올라가 박들이 지붕여기저기 앉아있었지요
돼지와 닭도 있었답니다
부엌 정지바라지문으로 나가면 대나무가있던 장독뒤안에는 장독
틈새에서 저절로나서 키만커버린 하얀접시꽃이 늦도록 꽃을피며
올라갔던 모습 옆부추밭에는 수많은 봉숭아꽃들이 색갈대로 피어
있었고 장닭벼슬보다 빨간 맨드라미는 수많은잔씨들을 달고있었고 이른아침이면 피어버리는 나팔꽃은 언제나 싱싱해보였답니다
진보라빛의 나팔꽃....
저녘밥할무렵이면 어김없이 시계처럼 피워주던 분꽃또한 맘에드는 꽃이었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없어 일을못한다고 남보다 일찍 스레트와 기와로
지붕을단장하시던 아픈추억도 생각나네요
동네 연장을빌려줄때는 내이름을 크게써서 빌려주었던 기억
안방 아랫목에 벽장두개가 있었는데 한곳에는 이불을넣어두었고
아버지자리위에는 여러가지 문서며 도장 한문으로만된 누렇게
변하고 손때묻은 많은책들이있었고 벽에달린 나무선반하나 그곳
에는 가느다란 무서운매도 하나얹어있었고 화투도하나있어서
저녘이면 딸들하고 육백이란것을 가르켜주시기도 햇었지요

그선반위에 유일한라디오한대 연속극을 좋아하셨고 그때 만담도
너무나 즐겨들으시던 모습도 생각이납니다
아버지는 봄가을이면 약초를캐러 다니셨는데 저를데리고 다녔던
생각 지금생각하니 한없이그립기만 하답니다
내가 나이를먹으면서 아들키우는 재미도 쏠쏠한데 우리아버지는
그런재미를 못느끼고 살았을생각하니
밥하다가도 찔끔 일하다가도 찔끔 그생각만하면 핑그르르....
차라리
차라리 몰랐으면 좋으련만
이맘때가 아버지제사거든요

지금일곱딸들은 모두아들하나씩은 두고있거든요
팔순이넘으신 우리엄마 봄이면 중국여행가신다고 준비하고 있답니다
무사히 잘다녀오셨으면 좋겠네요
큰언니가 모시고 간데요
세상에 나와진 아들들이여 부모님한테 잘해드리세요
효도해드리기를 바래봅니다

들어도 가슴이 찌릿찌릿한 노래도 신청합니다

김경호의 아버지
유주용의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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