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오랜만에 나들이 왔습니다.
전학이라..
1976년4월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중3이 되었을때 이미 저는 다니던 학교에서 퇴학을 당했던
신분이라 그 학교엔 가지도 못하고 돈만 생기면 서울로 도망
간다는 계획하에 열심히 중간학교를 다니고 있었는데 동네친구놈이 아버지께 일러버쳐서 들통이 나고 말았었죠.
퇴학 당했다는 말씀을 차마 부모님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불같은 아버지 성격에 맞아죽을까 걱정도 되었고 동생들
보기에도 그렇고 산이나 길거리를 배회하며 시간만 떼우다가
집으로 갔었는데 매일 학교에서 보이던 제가 보이지 않으니
친구가 이상해서 알렸나 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요.
상상에 맏깁니다.^^.
어찌어찌하여 집 근처에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갔는데 처음
교실에 들어설때의 설레임과 두려움은 이루 말 할 수없었고
모기만한 소리로 인사를 했는데 무슨 소리를 했는지도
모르겠고 단발머리 예쁜 여학생들의 호기심어린 눈빛은
정말로 부담스럽더군요.
까까머리 남학생들만 다니던 학교에 다니다 남여공학의
학교로오니 왜 그리도 설레던지요.
오며가며 눈여겨 보았던 여학생과 같은 공간에서 공부한다는
게 좋기도하고 한편으로는 챙피하기도하고 만감이 교차.
불편한 것도 많더군요.
제가 시내에서 다니던 학교 1.2년 선배가 있어서 형이라고 불러야하는 거북스러움도 있었고 큰 학교에서 좀 놀았다는 놈들은
다 모였으니 기존에 다니던 순진한 학생들도 알게모르게 물들어가고 때론 분위기도 험악해지고..
제가 전학가서 며칠후 충청도 어느 도시에서 연예인 뺨 칠
정도의 예쁜 여학생이 전학을 왔는데 그 애 역시 퇴학생이
였습죠.
얼마나 예쁘던지 남학생들 시선은 모두들그 애한테 쏠리고
그동안 남학생들한테 인기 많던 여학생은 완전히 비상사태
발생.
그렇게해서 전학 온 학생들이 한 반의 3분의 1은 되었으니
완전히 외인구단이죠.
짬뽕도 그런 짬뽕은 없을겁니다.
하루가 멀게 일어나는 사건 사고들.
사고뭉치들만 다 모였으니 그 게 당연하지만...
시내에서 떼로 몰려와 여학생들과 어울려 다니니 조용하던
시골 동네 어른들은 학교에 오셔서 불량학생들 그만 받으라
따지시고 ...
더군다나 실업중학교는 문교부 인가가 나지 안아서 고교 진학을 하려면 검정고시를 거쳐서 합격을 해야 했기에 지난해 진학에
실패한 선배들도 있어서 누가 진짜 동창인지 구별도 잘
못했으니 형, 누나, 오빠라고 부르는 해괴한 모임들...
그나마 다행인건 그 해 막바지에 정식학교로 인가가나서
고교 진학은 했지만 골통들의 모임이였던 학교에서
추억은 영원히 잊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모교.
초,중,고 모두 제가 다닌학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으니 이 또한 서글픈 일이죠.
역마살이 있는지 고교에서도 전학을 다녔었고 군대에서는
몇번이나 보따리 쌓었는데 8년째 가게에 갇혀서 지내는
제가 참 대견합니다.
밤에 썼다가 지워져서 다시 쓰고 갑니다.
11시인데 출근도 못하고 무슨 짓인지.^^.
산이슬 : 이시가던날
책 신청합니다.생전 처음으로...
1년 전 목동 생음악 24탄때 애청자중에 맨 처음으로
백행숙씨와 최노임씨를 만났던 날입니다.
교복을입고 풍선을 나눠주는 모습이 얼마나 예쁘던지
방송국 직원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방송에서 자주
듣던 이름.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설렙니다.
모닥불 로고가 찍힌 풍선은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지만...
기념으로 찍은 사진을 가금씩 꺼내보며 그 때의 추억을
회상하는 순간이 참 행복합니다.
수 많은 애청자중에 맨 처음으로 알았다는 인연의 소중함을
아름답게 간직하며...
하늘색 꿈 고맙게 잘 들었어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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