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엄마를 15살(중2때), 어버지를 32살(작년)에 모두 하늘나라로 보내드렸습니다.
엄마는 2년동안, 아버지는 10년동안 병원에 계셨기에 병원에 대한 기억이 많습니다. 아픈기억도 있고, 재미있었던 기억도 있지만 역시 아픈기억이 더 많으네요.
아버지가 2년 6개월동안 중환자실에 계시다 2인실로 옮기셨을때 전 휴일이면 아버지께 가서 손톱 발톱을 깎아드리고, 발도 씻겨드리고, 수염도 깎아드리곤 하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너무 부럽게 바라보셨던 오랜 탄광생활로 진페증에 페암말기로 입원하신 할아버지까지 전 얼마간 두분의 아버지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결국 할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그 가족과는 정말 이웃사촌처럼 가깝게 지내게 되었고, 아버지가 살아게실때까지 연락하며, 병문안도 와주시곤 했습니다.
그러다 6인실로 옮기게 되었을때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께 많이 죄송스러운 생각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인실보다 환경은 못해도 훨씬 재미있고 활기찬 힘 같은 걸 느꼈습니다.
우리아버지는 오랜동안의 입원생활로 항상 입원실의 방장이였지요.
많은 사람들과 생활하다보니, 엉뚱한 사람은 왜 그리 많은지,
남의 먹을 것을 몰래 훔쳐 먹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보호자는 모든 환자의 보호자가 되어 간식을 책임지는 분도 계셨고, TV채널을 두고 논쟁을 벌이는 청년환자들, 사사건건 남의 일에 간섭하는 환자들...
각양각색의 환자들때문에 웃고, 우는 일이 만았습니다만, 늘상 서로의 병을 걱정해 주는 것은 모두 같았었습니다.
저는 병문안갈때 마다 아픈아버지무릎에 머리을 디밀고는 그 긴머리에 흰머리를 뽑아달라며 응석을 부리고, 아버지는 제게 핀잔을 주며, 흰머리를 하나, 둘, 헤아리시며 결혼도 못하고 흰머리가 늘어가는 절 걱정하시는 모습에 온 병실안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게 했던 철없는 척하는 저와 아버지는 인기만점 부녀지간이였습니다.
아버지가 임종하시기 일주일동안 중환자실에 계실때 전 얼마나 울고 다녔는지 병원에서 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때 여자화장실 앞에서 저를 일부러 기다리시다 " 아버지가 의식이 없고, 말씀은 못하시지만 다 듣고, 생각하고, 느끼십니다. 그러니 그렇게 너무 울지마세요~, 아버지가 얼마나 맘 아파하시겠어요. "하고 절 위로해 주시던 젊은 의사선생님을 전 영원히 가슴 따뜻했던 한 사람으로 기억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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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2때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 여름방학때 엄마 손톱에 봉숭아 물을 들여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가을에 엄마는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봉숭아 꽃을 보면, 박은옥씨의 봉숭아를 들으면 엄마가 생각나면서 희미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신청곡 : 박은옥 / 봉숭아
<두바퀴> 아버지의 입원시절을 떠올리며...
강승실
200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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