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화롯불.
백선희
2008.01.18
조회 18
내 유년시절중 겨울의 기억을 꼽으라면 충북 음성 생극에서 자란 나는 겨울에 학교를 다녀오면 늘 할머니는 "선희 이제 왔니? 추운데 얼른 들어와라"하셨다. 마당을 지나 봉당을 지나 할머니 방으로 들어가면 중풍으로 수족이 불편하셨던 할머니는 언제나 뒤에 뻘건 밍크 담요를 뒤집어 쓴 침 담그는 감을 배경처럼 하고 앉아계셨다.
할머니는 앞에 식탁처럼 나눈 화롯불을 슬쩍 내 앞으로 밀어주신다. 그리고는 슬쩍 슬쩍 숯불사이에 묻어두었던 작은 고구마랑 군밤을 내어주신다. 그럼 난 화롯불에 손을 녹이고 고구마랑 밤을 까 먹는다 그리고 밖에 나가시지 못하는 할머니를 대신해서 학교일이랑 아랫마을 사람들 얘기까지 자세히 해드린다.
그럼 할머니는 크게 웃고 하셨다. 밖에서는 할아버지가 소죽을 끓이시는 냄새가 묻어나고 친구들이 가방을 내려놓고 "선희야 놀자"하고 마당에서 날 부를때면 난 할머니 방을 박차고 나가서는 비료푸대에 지푸라기를 잔뜩 넣어서 윗동네로 올라가곤 했다. 그곳에는 구엉바위라고 있었는데 겨울에 꽁꽁 얼어서 비료푸대로 썰매를 타는 맛이 정말 날이 새는줄도 몰랐다.
추워서 콧물은 찔찔 나오는데도 손은 곱아서 잘 펴지지도 않는데도 내려오고 다시 비료푸대 들고 돌아 올라가는걸 멈추지 않는 우리의 오후 시간은 늘 엄마가 불르러 와야 끝났죠.
"밥때 되면 내려와야지 꼭 엄마가 찾으러 와야 오냐 ..으이구 내가 못살아 옷이 이게 뭐냐~~ 이걸 으째 빠나?"
엄마한테 잔소리를 들으며 내려가는 그길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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