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7080세대의 노래가 익숙한 40대 중반의 불량 애청자입니다.
유가속이 방송되는 시간대가 아이들이 귀가해서 간식 또는
이른 저녁식사를 마치고 학원 갈 준비를 해야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준비해주느라 매일은 애청을 못해서요.
중고딩이 3명이나 되다보니 참 바빠요.
저의 유년시절을 추억해보면 가난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떠오릅니다.
전답이 전무했던 저희집은 겨울나기가 더욱 버거웠던 기억이
납니다.
다른 집들은 추수를 하고 난 볏짚을 마당에 집더미 만큼
쌓아두고 겨우내 땔감으로 사용하는데 저희집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어린 저를 데리고 겨울날 수시로
땔감을 찾아 마을 주변의 야산을 헤매야 했어요.
소나무 낙엽과 솔방울을 갈퀴로 긁어모으고, 잔가지를 베어
적당한 양이 되면 지푸라기 새끼줄로 묶어서, 머리에 이거나
등에 매고 해가 져서 어스름해진 저녁길에 산을 내려오곤
했습니다. 그때는 불조심 강조기간이라서 입산금지를 해서
함부로 나무를 땔감으로 베어오지 못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가난한 저희집은 어쩔 수 없었어요.
이와같이 땔감을 찾아 힘겨운 겨울을 보내는 가운데서도
가끔씩 재미난 놀이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희 어린 시절에는 눈이 참 많이 왔었지요.
눈이 많이 오는 날이면, 마을 뒷동산으로 가는 언덕길이
곧 눈썰매장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손으로 만든 썰매를 타는 아이도 있었지만, 손쉽게
비료포대 하나만 있으면 최고의 썰매가 되었습니다.
저희집은 농사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비료포대도 없었네요.
농사를 많이 짓는 이웃집에서 비료포대를 얻어서 친구들과
또 동생들과 신나게 눈썰매를 탔습니다.
너무도 가난해서 너무도 힘겨웠던 유년시절, 그래서인지
그시절의 기억들이 거의 마음속에서 사라졌는데......
시골에서 살면서 전답이 없고 큰아버지댁의 방 한칸에
더부살이를 하며 어머니의 행상으로 생계를 유지했다면,
가난의 정도를 짐작하시겠지요.
잠시나마 즐거웠던 추억을 더듬어보니, 뒷동산 언덕길에서
비료포대로 눈썰매를 타며 놀았던 시간입니다.
지금의 저는 음악속에서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유년시절의 가난의 아픔을 보상을 해주시는 것 같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습니다.
방송진행과 연출을 병행하시느라 수고가 두배로 많지요.
수고하심에 늘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시기를 다시한번
기원드립니다.
*신청곡- 옛생각/조영남
개똥벌레/신형원
편지/어니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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