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칸의 추운 유년의 꿈들
이기봉
2008.01.19
조회 40

안녕하세요?
영재님 그리고 유가속 제작진 여러분

저는 현역 군인 입니다.
2003년 8월 다산부대 2진으로 아프가니스탄으로
파병을 갔었습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왔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그곳도 비가 오고, 눈도 오고,
가끔씩 우박도 온답니다.

제가 있었던 그 해 겨울, 눈이 왔는데 어찌나 많이
오던지 그야말로 펑펑 내렸습니다. 기지사령부에서
근무하고 있던 현지인 말로는 몇십년 만에 내리는
눈이라고 하면서 아마도 한국군 부대가 와서 내리는
"신의 선물"이라고 설명 하더군요. 하하

저는 부대원들과 인근 마을로 학교 건물을 지어주기 위해
그곳 마을의 촌장과 주민들을 만나로 갔었습니다.
우리 장병들은 3대의 차량으로 경계작전을 짜고 분승하여
기지를 출발했습니다.
마을로 가는 도중 우리는 한국에서 온 코이카 소장 등
그 일행을 만나기 위해 마을로 접어드는 도로 어귀에
차를 주차하고 그들을 기다렸습니다.

수도 카불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라 테러가 빈번한 지역이라
우리 대원들은 차에서 내리자 마자,
사주경계에 들어갔습니다. 눈은 계속해서 내리고
그치지를 않습니다.

잠시 후 저쪽에서 어린 소녀가 물동이를 이고 우리쪽으로
걸어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경계 작전중이던 병사가
그 소녀를 수색한 후 우리쪽으로 보냈습니다.
나이가 아마도 10살 안쪽이었던것 같습니다.
자주색 옷에 까만머리가 길고
눈이 새카만게 굉장히 예쁜 얼굴이었습니다.
저는 우리 애가 생각이 나서 주머니 속에 있던 사탕과
생수(물이 귀함), 그리고 음료수를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안받더니 재차 권하자 수줍어하며 받고 인사를 하며
고맙다는 표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어린 소녀는 맨발이었습니다.
저는 어찌나 놀래고 가슴이 찡하던지 저는 그 아이의 발을 가리키고
제 가슴에 손을 얹고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이는 수줍게 활짝 웃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에 있는 아이들 생각도 나고 해서
(그러면 안되지만)주머니에서 갖고 있던 달러를 꺼내
주면서 발을 가리켰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한번 돌아본 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총총 걸음으로 마을로 들어 가 버렸습니다.
맨발로 그 추운 겨울에 흰눈을 밟고 가는 모습 아직도
생생합니다. 얼마나 추웠겠습니까? 그 발로 수킬로를 걸어
물을 길어 집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지나 한국에서 손님이 우리부대로 왔습니다.
KBS 다큐멘터리 제작(한민족 리포트:무기여 안녕
아프가니스탄 채수문, 2004년 1월 26일 방영)을 위해 온 것입니다.

당시 카불 '유남아(UNAMA)'(카불 내 다국적군으로 구성되어
아프칸 지원을 위해 주둔중인 부대)에 근무하던
채수문중령(예편)을 촬영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저는 오랜만에 한국에서 오신 분들로 마음이 행복했습니다.
그 분들은 기지내 한국 장병들이 지원하는 모습을 촬영하고
현지인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촬영하고 싶다는 말에
그분들과 함께 기지 인근 마을로 향했습니다.

평소 우리가 하던대로 선물을 주고 동네 어르신들과
대화도 하고 했습니다. 그곳에 모인 아이들도 일부는
플라스틱 구멍이 숭숭 뚫린 신발에 맨발로 또다른 아이들은
완전히 맨발로 언땅을 디디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 대여섯살된
여자아이 하나를 번쩍 안아 사탕을 까서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그 아이와
저는 분명 서로 눈을 마주보면서 통했을 겁니다.
따뜻한 서로의 마음을 말입니다.

나중에 파병 복귀해서 안 일지만, 제가 사탕 까 주고
선물을 나누어 주던 모습이 그대로 여과없이 방영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우리 아이들도 그 모습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우리 둘째는 그때 그 아프칸의 소녀 얘기를 합니다.

그곳 아이들은 돈이 없고 가난해서 신발 하나 제대로
변변히 신지 못하고 겨울을 지냅니다. 열명 정도 있으면
한 두명 만이 신발, 그것도 플라스틱 신발입니다.
한 집안에 아이들 신발이 한 켤러 있는데 형제들이 돌아가며
그 신발을 신고 외출을 합니다. 당시 1달러만 있으면
네가족 기준 하루의 식사('랑' 현지음식)를 해결 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한 그들은 아직도 가난한 터널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이 추운 겨울을 그렇게 지내고 있을 겁니다.
그 조그마한 발들이 추위에 갈라지고 터진 발들
그래도 아이들은 아프다는 말 한마디 없이 깔깔대며
떠들고, 장난치고 흙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
낯선 이국땅에서 온 군인들을 보면 그 터진 발로 뛰어 와
원 달러 기브 미를 외칩니다.

70년초까지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잘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추운 겨울 날이면 저는 그 아이들로 머리가 복잡해
집니다.

영재님! 추억의 글로 애청자들을 유쾌하게 해 드려야 되는 줄
알지만 그 아이들을 잊을 수가 없어서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
저는 그 짧은 파병기간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또한 제 삶에 있어서 크나큰 전환점이 되었기에
늘 그곳을 잊지 못합니다.

최근들어 그곳이 다시 테러가 횡행하고 국민들은 더 굶주림에
경제가 어려워지고 있으며 다시 마약을 재배하고 있다는
영상물을 접하고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지난번 생각 짧은 몇몇 사람들로 인해 우리국민들은 그곳에
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이 글은 <유가속"의 애초 기획 취지에
맞지는 않겠지만 아프칸 아이들의 유년의 모습이 생각나
몇자 적어봤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들도 성장하여 제 나이가
되어 과거 유년의 그 날을 회상하며 진정 웃을 수 있는
그날이 반드시 왔으면 좋겠습니다.

수고하세요.


추신 : 영재님! CBS를 사랑하고 유가속을 사랑하는 우리
애청자들이 도움을 줄 수는 없을까요? 작지만 성의있는
모금 운동을 한다던지 뭐 이런 색다르고 이 겨울을
훈훈하게 해 줄 수 있는 이벤트로 말입니다.
감히 제안해 봅니다.(다른 프로그램에도 이 글을 남겼고,
많은 사람들에게 제 뜻을 전하기 위함임을 알립니다.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것은 절대 아님을 밝히고져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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