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유년) 고구마 말랭이...^^
김영철
2008.01.24
조회 53
우리 동네서는 고구마 빼따기라고 했는데... 아마 뼈다귀의
사투리 버전이 아닌가 쉽네요. 몇개만 있으면 왼종일 물고 놀았죠
ㅎㅎ 저랑 연식은 좀 차이가 나는데 놀던 모습은 비슷하네요
또한 저도 어머님 연세 마흔에, 두분 모두 안계신것 등등..
참 비슷한 사연이 많네요..씩씩하신 모습에 비해서...
좋은 하루 되시구요, 저번 같은 행운이 함께했으면....
입분님!!! 홧~~~~팅!!!!
박입분(park1707)님께서 작성하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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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저랍니다.
> 너무도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 과거를 생각한다는건 아름다웠던 기억도 물론 있지만
> 아픈 기억도 많은 어린 시절입니다.
>
> 42살에 현재 제 나이 보다 한살 적은 나이에
> 어머님께선 저를 낳으셨답니다.
>
> 미신을 믿는것은 아니지만
> 절 낳으시고 부터 가정 형편이 조금씩 피기 시작했다고...
> 저보러 "복덩어리"라고 말씀 하시곤 하셨지요.
>
>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입지도 못하며 자랐지만
> 부모님의 사랑만큼은 듬뿍 받고 자란 저랍니다.
>
> 늦은 연세에 절 낳으셔서 그런지
> 어머니는 늘 아프셨답니다.
>
> 관절염과 해수병에 시달리셨죠.
> 그럴때마다 나이가 어린 저였지만
> 늘 관절염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님의 다리를 주물러 드렸답니다.
>
> 그래서 지금의 저는 제아무리 제 다리가 아프다 하더라도
> 그 누구에게도 다리 주물러 달라는 말을 안합니다.
> 왜?
> 어린 나이에 어머니의 다리를 많이 주물러 드렸기에
> 다리 주물르기가 얼마나 힘든일인지 알고 있기에...
> 어느 상대에게도 전 그러고 싶지 않아서랍니다.
>
> 제나이 8살때에
> 아버지,어머니께선 선지 장사를 나가시곤 하셨답니다.
> 극히 많은 농사가 없었던 저희 집이였기에
> 장사로 생계를 이어가야만 했습니다.
> 아버지께서 지게에다 선지가 담겨져 있는 통을 짊어 지고
> 어머니께서는 그 선지를 팔고 돈이 아닌 쌀로 받은 것을
> 머리에 이고 돌아오시곤 하셨지요.
>
>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 선지통에 아주 쌔빨간색의 선지를 대접에 퍼서 팔았던 모습이
> 어찌나 빨갛던지 보기 싫을 정도로 색깔이 그랬었거든요.
> 에효~
>
> 선지 장사 나가셨다 늦게 오시는 날엔
> 언니와 함께 못하는 밥이지만
> 이남박(살씻는 그릇)에다 보리쌀을 씻어
> 아궁이에 불을 지펴 가며 밥을 했던 기억이 어슴프레이 납니다.
>
> 그땐 왜 그렇게 그런일들이 하기 싫었는지 모릅니다.
> 빨리 컷으면 좋겠다란 생각뿐이였거든요.
>
> 방한칸이였는데 6식구가 잠자기엔 넓었습니다.
> 벽은 예쁜 벽지도 바르지 않은 토방으로 된 벽이였고.
> 전기가 들어온지도 얼마 되지 않았을때입니다.
>
> 전기가 들어오기전엔 약간의
> 석유 심지가 묻어 있는 등잔불이 다였답니다.
>
> 숙제라도 하려 하면 등잔불 가까이에 가서 그림자 반대편에서
> 고개 숙이고 방박닥에 배깔고 엎드려 하곤 했지요.
> 연필심에 침 발라 가며...ㅎㅎㅎ
> 왜 그랬냐구요~?..글씨 진하게 잘써지라고..흐음~
> 그땐 뭐든지 귀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그렇게 하며 글씨를 섰답니다.
> 몽당연필도 그땐 유행이 되었지요.
> 아껴써야 했어요...모든것이 귀했기 때문에
>
> 유영재님과 민봄내 작가님 그거 알고 계세요~?
> 재래식 화장실이라서 휴지는 고사하고
> 습자지로 만들어진 하루 하루 넘기는 일력이 있었죠~?
> 화장실에서 휴지 대용으로 그 달력을 이용하며 살았다는 사실요.
> 또 한가지
>
> 어디선가 귀한 껌이라도 한개 생기면
> 그 껌을 오래 씹고 싶어 버리지 않고
> 나무기둥과 장롱 같은데다 붙혀 놨다 그다음날 씹게 되고
> 그게 아쉬우면 크레파스 섞어서 씹으면
> 칼라 껌이 된다해서 그렇게 씹고 놀았던 기억들이...ㅎㅎㅎ
>
> 눈이 오면 눈싸움은 물론이요
> 눈을 모아 그당시에 신었던 검정 고무신으로
> 반질반질 거리도록 혹뿌리를 만들어 탔던 기억이 납니다.
> 또
> 고개 넘어 논두렁에 얼음이 꽝꽝 얼면
> 철사를 넣어 만든 썰매와 장대못을 박아 만든 썰매 꼬챙이를
> 들고가 친구들과 재미있게 놀다가 해지는 줄도 모르고
> 놀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 한테 무지 혼났던 일도 생각나네요.
> 그땐 왜 그리 추위도 모르고 놀았던지
> 신발은 고사하고 양말과 바지가 다 젖었어도 추운줄도 모르고
> 놀았던 그시절이 그리워지네요.
>
> 초가집 처마 밑엔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있고
> 지금은 맛볼 수 없는 그시절에만 맛볼 수 있었던
> 지붕 처마 밑에 달린 고드름을 따먹기도 하고
>
> 긴 겨울동안 아이들의 간식은 ~?
> 다름아닌
> 방 윗묵에 대나무발에 멍석 두르고 왕겨 섞어
> 고구마를 나름대로 저장해 고구마가 썪지 않게끔 했었고,
> 그래도 간혹 썪는 고구마가 있는가 하면
> 그 고구마의 썪은 냄새는 아주 고약했답니다.
>
> 엄마가 고구마 삶아주면 맛나게 동치미 국물과 함께 먹었고
> 먹다 남은 삶은 고구마는 잘게 잘라 말려서
> 고구마 말랭이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
> 고구마 말랭이란?
> 삶은 고구마를 납작하게 썰어서 말린것을 말함.
> 삶은 고구마를 썰어서 말리게 되면 딱딱해 지는데
> 씹을 수록 고소한 맛이 나는게 장점이랍니다.
>
> 유년 시절의 여름 간식으론~?
>
> 삶은 옥수수, 단맛이 나는 수수깡,
> 식용 맨드라미를 키워 맨드라미의 잎을 잘게 잘라 넣고
> 식용색소를 참깨에다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으로
> 예쁘게 물들여 증편위에 맛갈스럽게 올려서 찐 증편,
> 갓 캐온 칙뿌리,노오란 참외,수박,벚나무에 열리는 벚지,
> 뻐르수 나무에 열리는 아주 작은 열매 뻐르수등이 있고,
>
> 유년 시절의 겨울 간식으론~?
> 삶은 고구마,고구마 말랭이,술빵,옥수수 강냉이,고구마 물엿,
> 그리고 칙뿌리 말린것..등등이 이었습니다.
>
> 그땐 먹을것이 참 많았다란 생각을 하고 자랐지요.
> 지금에 아이들과는 사믓 다른 간식들이지만
> 지금의 인스턴트 보단 그때의 그 간식들이 최고였단 생각이 듭니다.
>
> 그런 간식들을 형제 자매들이 함께 나눠 먹기도 하고
> 서로가 많이 먹으려 뺏고 뺏기는 싸움도 많이 했던
> 기억들이 하나 하나 떠올려집니다.
>
> 그다지 풍족하진 못했지만
> 알콩달콩 싸우기도 하면서 때론 서로 챙겨줘가며 지냈던
> 저의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
> 지금은 부모님 두분 다 돌아가시고 않계시지만
> 요맘때 겨울이 되면 늘 말없이
> 방바닥 차갑다고 따뜻하게 군불 때주던 아버지의 얼굴도,
> 늘 관절염으로 고생하시던 엄마의 모습도
> 어렴풋이 생각이 나네요.
>
> 아~~~
> 그시절로 다시 돌아 갈수만 있다면
> 연로하신 두분께 막내 딸로서 효도 잘할듯 싶은데..
> 저의 욕심이겠죠~?..허망한 꿈이 겠죠~?
>
> 유영재님 & 민봄내 작가님~!!!
> 감사합니다.
> 이런 이벤트가 없었다면
> 유년 시절 떠올릴 기회나 있었겠어요~?
> 이 모든 것이 다
> "유가속" 덕분이랍니다.
>
> 회상할 수 있는 마음속의 어린시절 추억이 있다는건
> 내 삶의 힘이 되어주는 밑바탕이 되어 주지 않을까요~?
> 라고 내심 생각해 보면서
> 이렇쿵 저렇쿵 나름대로 저의 어린시절 이야기 하고 갑니다.
>
> 어린시절...동심의 세계에서 처럼
> 순수하고 맑고 깨끗한 맘으로
> 올 한해 "유가속"에 몸 담고 싶습니다.
>
> 항상 감사하는 맘 전합니다.
>
> *신청곡*
>
> 나 훈 아 - 사랑
> 나 훈 아 - 영영
> 나 훈 아 - 내 삶을 눈물로 채워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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