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먼저 '유영재의 가요속으로'의 8살 생일을 축하드립니다. 저는 외교관에게 한국말과 한국문화를 가르치는 한국말 선생님이자 12살짜리 아들을 둔 엄마입니다. 학생들이 한국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할 때마다 평소에 '유영재의 가요속으로'의 애청자임이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최근 유행하는 빠른 노래보다 유영재님이 선곡해주시는 노래가 외국학생들이 배우기에 참 좋거든요. 이번 이벤트를 통해 제 기억 저편에 자리잡고 있는 추억이 되살아나 저를 미소짓게 하네요.
때는 바야흐로 1977년 겨울, 엄마 아빠는 우리 삼남매를 키우기가 힘드셨는지 시골에서 도우미 언니(그당시는 식모라고 했지요)를 하나 구하셨습니다. 제가 여자인지라 저랑 하룻밤을 같이 잤는데 그만
'이'가 옮아버리고 말았어요. 부모님은 놀라셔서 그언니를 바로 내려 보내고 그날부터 '이'와의 전쟁이 시작되었지요. 제 기억에 이 잡는 약이라고 밀가루 같은 약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있기도 하고 '석캐(?)'라는 알을 없앤다고 참빗으로 빗어보기도 했지만 일단 제 머리에 창궐한 이의 번식력을 따라 잡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직도 이가 제머리에 돌아다니는 느낌이 생생하답니다.
아빠는 극단의 조치로 삭발령(?)을 내리셨지요. 이발소에서 바리깡으로 쓱쓱 밀어지는 제 머리을 보고 아빠는 웃음을 참지 못하셨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목전에 둔 저로서는 참 난감하더라구요. 사실 지난 2002년 월드컵때 차두리 선수를 볼때마다 이때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엄마가 어디서 구하셨는지 곱슬머리 (다행히 굵은 웨이브였습니다. 아직도 그때 사진이 있어요.) 가발을 씌워서 학교에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선생님이 그림을 잘 그렸다고 칭찬해 주시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는데 머리가 움직인다고 놀라시는 거예요. 어찌나 부끄러운지.. 제 생각에 그 당시에 아무도 제가 가발을 쓰고 다니는지 몰랐나 봐요. 그리고 6월쯤 날이 더워지니까 머리에 통풍이 안돼서 그런지 부스럼이 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자 엄마가 가발 쓰지 말고 학교가라고 하면서 가발을 안 주시는 거예요. 어린 나이에 가발달라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치마를 입고가면 여자라고 생각할 거라는 엄마의 감언이설에 속아 학교에 갔더니 남자가 치마입었다고 얼마나 놀려대는지... 제가 베이비 붐 세대라 한반에 학생이 80명이나 됐거든요.
아무튼 2월 말에 자른 머리는 겨울이 돼도 9-10cm밖에 자라지 않아 밖에서 놀기 좋아하는 저한테는 무척이나 추웠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머리를 머풀러 삼을 정도로 긴머리로 추운 겨울 잘 나고 있습니다.
유영재의 가요속으로 잘 듣고 있구요. 누가 불렀는지 잘 모르겠지만 '유년시절의 기행'이란 노래를 듣고 싶네요. 가능하시다면 2월3일 공연티켓이면 모처럼 남편하고 데이트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우리 애청자들이 늘 곁에서 응원하고 있으니까 10년 20년 장수하는 프로그램 되시기 바랍니다. 저도 65세까지 외국인에게 한국을 알리는 민간외교관으로 열심히 살테니까요. 아자아자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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