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동생이 8살, 제가 10살때 일이에요.
인천에서 살던 우리 네가족은 헤어지게되었어요.
마지막날 아빠와 엄마 그리고 동생 저 네명은 엄마가 좋아하는 일식을 먹고, 매일 사달라고 졸라도 들은척하지 않던 아빠가 강아지를 보여주며 차에 태우더라구요. 그땐 엄마랑 헤어지는것보다 강아지를 만나는게 어쩌면 더 기뻤나봐요. 강아지를 안고 타는데, 그 추운날 엄마가 다리를 절뚝 절뚝 절면서 눈물을 흘리고 걸어가는모습이 저와 제동생에겐 별 느낌없었나봅니다.
처음보는 아줌마와 아빠, 그렇게 저희는 유년생활을 시작하게되었습니다. 매일 순종하는 엄마와 듬직하고, 가장같았던 아빠가 이 집에서는 귀잡혀 끌려다니기도하고, 애교도 피우고, 볼수없었던 아빠의 새로운모습이 보였구요. 강아지와 노는것은 좋았는데 계속 엄마가 보고싶더라구요.
그래서 엄마를 몰래만났어요. 엄마와 함께 노래방에가서 같이 노래를 부르며 불렀던 담다디, 산할아버지, 화가아저씨..등등 결국 저는 제 동생을 데리고 엄마를 따라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엄마는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에 우리가 잘때 김밥말고, 오징어를 뜯느라 저희와 함께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 방한칸에서 3명이서 사는그 겨울이 제일 따뜻했던것같습니다. 엄마와 안헤어져있어도 되었으니까요.
그래도 저희집은 다행이도 연탄은 아니였구요. 기름보일러였어요. 그래서 어린 제동생이 남자라고, 엄마와 저와 함께 기름을 사러 주유소를 들리곤하고, 전화가 없어서, 공중전화를 쓰러 잠깐 슈퍼앞을가면 동생이 항상 절 지켜주곤했죠.
오뎅이 하도 먹고싶어서 동생과 방을뒤지고, 이곳저곳 살펴보다보면, 200원이 나옵니다. 그럼 제동생과 떡볶이집에 뛰어가서 오뎅을 둘이 같이 사먹었어요. 그런데 그날 오뎅국물을 아줌마가 안주시면, 집에오면서 투덜투덜 오뎅국물안준 아줌마를 욕하기도 했구요.
집에 세탁기가 없어서 매일 동생과 손으로 빨래를 하는데, 그래도 그땐 그 차가운 물로 손빨래하는것이 재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지내던것이 엊그제같은데 제동생이 벌써 군대에 있습니다. 오늘도 역시 눈이 많이 쌓인 강원도에서 눈을 쓸고 있겠죠. 그래도 그렇게 힘들었던 겨울들을 보내고, 성인이된 제동생이 너무 예쁘기만합니다.
다음주 제동생이 휴가를 나옵니다.
동생의 얼은몸을 녹일겸, 같이가면 참 좋을것같네요.
신청곡: 패닉 - 달팽이
제동생이 항상 즐겨부르던 노래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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