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7년 겨울은 제가 태어난 지 8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시골중에서도 아주 깡촌이었던 충남 서산의
작은 농촌 마을였어요.
그당시 시골의 겨울은 눈도 참 많이 오고, 춥기는 또 얼마나
추웠나 몰라요.
소복히 눈이 덮힌 초가지붕 위로 뽀얀 저녁 연기가 피어 오르면
배고픈 줄도 모르며 뛰노는 자식들을 불러 모으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교회당의 종소리처럼 사랑으로 울려 퍼졌지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우리들 배꼽 시계가 정신없이 딸랑딸랑
요동을 쳐 댔고, 그제서야 나와 동생들은 마치 육상대회라도
치르듯 마구 집을 향해 달렸어요.
희뿌연 부엌 문 틈으로 보이는 어머니의 몸빼 바지.
매우면서도 생그러웠던 생솔 가지 타는 냄새.
지금 생각하니 그건 돈 주고도 못 사는 행복이었네요.
요즘 아이들은 감히 꿈조차 꿀 수 없는 유년의 향연이였죠.
겨울만 되면 땔감이 걱정이었던 그 시절.
다른집들은 아버지가 거의 나무를 해 오시는데, 우리 아버지는
그 당시 나무를 잘 안 해 오셨어요. 겨울 내내 아버지는 동네
마실를 다니시며 화투판을 전전하셨지요.
그런 아버지가 못마땅하셨어도 어머니는 이렇다할 잔소리
한 번 없이 손수 당신께서 나무를 해다 채워 놓곤 하셨어요.
부엌 한 켠에 붙은 나뭇간에 땔감이 떨어져 가면 두살 위인
오빠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지게를 지고 산에 나무를 하러
갔고, 저도 갈퀴를 한 손에 들고 오빠 뒤를 따랐지요.
나뭇가지 위의 잔설을 탁탁 털어 낸 다음 오빠는 능숙한
낫질로 삭정이를 잘라냈고, 저는 제 키만한 갈퀴 자루로
마른 솔잎을 긁어 모았죠.
오빠는 삭정이와 솔잎을 지게에 가득 싣고, 오빠 덩치보다
더 큰 지게를 번쩍 지고 일어나 나무를 해다 날랐습니다.
멀리서 쳐다보면 사람은 안 보이고 지게가 걸어다니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러던 어느날,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오빠와 산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는데,
멀리 보이는 우리집에서 연기가 막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어요.
"오빠야, 저거 봐라. 우리집에서 연기가 난다."
그랬더니 오빠는
"아구마야, 우리집에 불이 났네."
하면서, 집으로 달려 갔습니다.
"불이야, 불이야. 우리집에 불 나었어요. 불이야..."
오빠와 나는 있는 힘껏 불이야를 외쳤고, 손바닥 만한 마을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바케스, 세수대야를 들고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달려 오셨고,
우물에서 물을 퍼 나르고, 소나무 가지로 불길을 쳐 대느라
삽시간에 우리집은 전쟁터로 변했습니다.
불이 시작된 곳은 다름아닌 돼지 우리였습니다.
두살 아래 남동생이 볏짚에 불을 붙여 돼지한테 장난을
쳤던 것입니다.
동생말로는 돼지가 추울까 봐 따뜻하게 해 주려고 그랬다고
하더군요.
불을 보고 놀란 돼지가 우리를 부수고 뛰쳐 나갔고,
거기에 놀란 동생이 손에 들고 있던 불 붙은 볏짚을 돼지
우리 바닥에 놓친 거지요. 전날 새 볏짚을 깔아 준 돼지
우리는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이고 그 불길이 우리집 지붕으로
옮겨 붙은 것이였습니다.
어째됐건 동네 사람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움으로 다행히
불길은 지붕을 약간 태우다 잡혔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어요.
우리를 뛰쳐 나간 돼지가 놀라서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이리저리 날뛰며 애써 파종해 놓은 마늘밭을 다 망쳐 놓고
있었던 겁니다.
추위에 얼지 말라고 볏짚을 가지런히 덮어 둔 마늘밭이 망가지자
아버지를 비롯하여 동네 사람들은 마늘밭에서 돼지를 쫓아내느라
또 난리였지요.
쫓기던 돼지가 사지에 몰리자 어디로 튀었냐면, 다름아닌 우리집
뒤에 있던 저수지였어요.
추위에 꽁꽁 얼어 있던 저수지는 위험천만한 곳이였죠.
그것도 모르는 멍청한 돼지는 육중한 몸을 저수지로 날렸고,
결국 얼음이 깨지면서 냉수마찰에 들어가더군요.
우리집 재산 2호인 돼지(1호는 소)가 물귀신이 되나보다 했더니,
아 글쎄 이 돼지가 코를 벌름거리며 수영을 하는 거예요.
돼지가 수영도 할 줄 아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깨진 얼음을 헤치며 까까스로 물 밖으로 나온 돼지는 결국
며칠 못 가 시름시름 앓더니 죽고 말았답니다.
성난 돼지의 괴성도 무서웠지만, 우리집이 다 탈까 봐 그게
더 무서웠습니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울고 서 있는 저에게 오빠는
"야 이 지지배야, 울지만 말고 너도 어서 물 한바가지라도 퍼 와라."
하며 머리를 쥐어 박았지만, 제가 그날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저
우는 일 뿐이였습니다.
이 황당한 드라마를 연출했던 우리의 주인공은 그날 저녁 내내
뒤주 속에 숨어 있다가 어머니에게 발각이 되었지요.
그러나, 어머니께서는 꾸중 한 마디 안 하시며, 가마솥에
물을 데워 동생을 깨끗하게 목욕까지 시켜 재우셨어요.
불 낸 사람을 꾸중하면 그 사람이 죽는다는 말이 있었거든요.
쥐들이 들락거리는 뒤주 속에서 혼날까 봐 가슴 졸였을 동생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가끔 명절에 모여 어린 시절 얘기를 할 적마다 동생이 그럽니다.
자기는 아마 전생에 사도세자였을 거라고요.^^ 말이 되나요?
키가 좀 작은 오빠는 어릴 적에 하도 무거운 지게를 많이 져
날라서 키가 5cm는 클 수 있었는데, 못 컸다고 지게탓을 가끔
하죠.
무거운 거 많이 들면 키가 안 큰다는 말이 있으니 오빠 말은
일리가 있어 보이네요.
추억이란, 마음의 나이를 멈추게 해 주는 신비력 있는 듯 해요.
때론 행복한 인생길에 꼭 필요한 필수품 같기도 하고...
긴긴 인생의 여정에 가끔 꺼내 볼 수 있는 추억이 많은 저는
분명 복된 인생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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