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는 방학이면 대부분을 큰 댁이 있는 시골에서 보냈습니다.
겨울이면 특히 큰 아버지가 만들어 준 나무 썰매를 가지고
꽁꽁 얼어붙은 논바닥에서 썰매 타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당시 큰 집엔 사촌 형들이 셋이나 있어서
저는 또래 친구가 아닌 형들과 어울려 놀곤 했죠.
형들과 썰매를 들고 나가 시합을 하면
땅거미가 내려앉을 때까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습니다.
그렇게 놀다보면 발은 동상을 입기 일보 직전이고
손등은 벌겋게 터서는 꼴이 말이 아니였죠.
무엇보다 그렇게 놀다 들어오면 옷이 다 젖다보니
결국 매일 벗어 내놓는 빨랫감에 참다못한 큰 어머니의
호령으로 형들과 제게는 썰매 금지령이 내려졌습니다.
그걸 계기로 눈을 뜬 세계가 있었으니,
사나이의 승부욕을 무한 자극한 딱지치기였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당시 우리 사촌 형들은
그 동네 딱지치기 고수인 뒷집 형한테 대적할 실력이 못 됐습니다.
딱지 접을 만한 종이란 종이는 다 동원해서
수년간 도전장을 내밀어 봤지만 쨉이 안되더라는 겁니다.
썰매 금지령을 당한 우리 일당 넷은 그 형에게 다시 도전장을 내밀기로 하고 딱 저의 얼굴 크기만한 딱지 십여장을 만들어
기어코 그 형과 한 판 대결을 펼쳤습니다.
결과는 보기 좋게 참패. 그때 제 나이 9살,
'사나이 자존심이 이렇게 무너지는 구나’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형들은 큰소리 쳤던터라 미안했던지 어딘가로 가버리고
저는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눈물 콧물 흘리며 집으로 갔죠.
그런 저에게 구원 투수가 나타났습니다.
그때 저와 함께 큰 댁에 와 있던 누나였습니다.
누나는 딱지치기 지존인 형보다 한 두 살 많았을 겁니다.
제가 우는 모습에 우리 누님, 잠시 이성을 잃은 듯 하더니
평정을 되찾고 무기를 만들어야 한다며
누나가 아끼던 무언가를 꺼내는 겁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마분지 종이인형,
그것도 20원이 아닌 50원짜리, 빳빳한 고급 용지에
한 장도 아닌 두장씩이나 과감하게 턱턱 딱지로 접더니
저를 이끌고 딱지 지존 형아네로 가는 겁니다.
그때 아마 제가 잃은 딱지 거의 다 찾았을 겁니다.
저는 그때 우리 누나가 천재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아마도 그 형이 우리 누나의 기세에 눌려
봐 준 게 아니 였나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 사건 후로 누나에 대한 존경심을 마음 속 깊이 품게
됐다는 이야깁니다.
지금도 눈 오는 겨울이면 딱지치기 지존 형아네 집 담벽아래서
분노의 딱지 질을 하던 누님의 모습이 떠오르곤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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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가 이 프로그램 즐겨 듣습니다.
신청곡도 함께 올릴께요.
그리고 뮤지컬 티켓도 꼭 선물하고 싶네요.
# 신청곡 - 이문세 (옛사랑)
[유년] 사각 딱지의 노스텔지어
이원호
2008.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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