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특집] 내 어릴적 설 즈음
황덕혜
2008.01.29
조회 37
우리 아버진 맏아들 이셨다
그리고 손재주가 많으셨다 '쉼터'에 쓰여진 민작가 아버님 얘길 읽으며 울컥 치밀어 오르는 그리움이 있었다...

130평 되는 큰 집에 사시사철 꽃과 나무와 새와 나비 벌들의 왕래가 끊임 없었다
시들어 가는 모든것들이 아버지의 손길 한번이면 다시금 싱싱해 지는 기적이 일어나곤했다

대문턱이 닳도록 사람은 끊이지 않았고, 한번 집 안으로 들어선 분들껜 빈 입으로 가시게 하지 않았던 울엄마의 넉넉한 인심...

그러니 설날이 가까워 지면 먼일가 친척 부터 가까이에 사시는 일가까지 그 넓은집이 북새통이 됐다

미리 뽑아논 가래떡은 썰기 좋게 꾸덕져 있고, 가마솥에선 조청 달이는 냄새가 온집을 달구었다

펑튀긴 각종 곡물을 조청에 버무려 넓고 깨끗한 널판지에 깔아 홍두께로 평평히 밀면 잘갈아논 날 선 칼이 한번 쓰윽 지나가면 먹기 좋을 크기로 잘려진 강정들...

밤이 이슥 하도록 아주머니 몇분과 엄마는 유과를 튀겨 냈다
온집안 곳곳에 먹거리로 넘쳤고, 넓은 방들엔 사람 온기로 넘쳐났다

제일 클라이막스는 섣달 그믐밤...
일찍 자면 눈썹 하얘진다고 어른들은 웃음 깨물어 가며 근엄하게 얘길 했고 우린 쏟아지는 잠과의 전쟁을 치러야했다...

하지만 어쩌지 못해 절절 끓는 방에 쓰러져 잠들면 어른들이 더 신나 하며 쌀가루를 반죽하여 눈썹위에 켜켜이 발랐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다 참다 마당에 나와 데구르르 구르며 웃었던 아련한 기억..

방에 불을 끈 상태에서 성냥을 태워 작은 숯으로 만든뒤, 자고 있는 아이의 신체 일부분에 무차별로 꽂아 불을 붙이면 빠알갛게 타들어가다 신체의 일부분에 닿으면 커다란 불꽃이 형성 되면서 아이의 고함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앗, 뜨거! 씨~~언놈이 뭔짓 했노?"
한참 킬킬대며 장난쳤던 '불침놀이'...

큰오빠 아들이 좀 커서까지 혀 짤박이 소릴했다
더구나 잠자고 있을때 "원모야~~태극기가 바람에 우짠다꼬~~"
짓궂은 삼촌들이 물으면 자다가 씨익 웃기까지 하며 "펄러~~ 아뻘라~~" 했다
그애가 지금 경남 에서 교사로 재직중이다

안식구들이 모여 앉아 놋그릇 닦던 모습..
장독대에, 부억에, 대청 마루에. 부침개와 과일들과 강정과 유과들이 정말 산처럼 쌓였더랬다..

며칠동안 틈틈이 한땀 한땀 지어주신 예쁜 설빔 입고 세배하고, 온집안을 다니며 얻어먹던 떡국과 세배돈과 덕담들...

그 풍요로움 속에 자라서일까?
이즈음의 우리네 '설풍경'은 웬지 내것이 아닌것 같아 자꾸만 뒤가 캥겨진다

잃어서, 잊고 지냄이 비단 '설풍경' 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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